하정우 감독은 도대체.

<허삼관(2015)>을 보고

by 솜귤


오랜만에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일정을 시작해서 점심에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제 쉬는 시간, 나른함이 더해진 일요일 낮. 오늘은 또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넷플릭스에서 <허삼관(2015)>을 켰다.


하정우 감독의 두 번째 작품. 하정우, 하지원, 남다름 주연.

특별히 끌렸다기보다 그냥 무료한 일요일에 알맞은 영화일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의 유머코드가 나와 맞는지 궁금할 때(상대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전제하에) “혹시 <롤러코스터(2013)> 봤어요?”라고 물어본다. 안 봤다고 하면, “혹시 <로비>는? <윗집사람들>은? “ 하고 묻고, 봤다고 해도 묻는다. “혹시 <로비(2025)>는? <윗집사람들(2025)>은?”


사실 나에게 <롤러코스터(2013)>는 혼돈 그 자체였다. 우주의 빅뱅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게 뭐지? 도대체 이건 뭐지? 같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100개쯤 떠있는 와중에 영화가 끝난다. 하여튼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근데, 너무 재밌잖아?


나한테 하정우라는 배우는 어떤 사람이었냐면, 알듯 말 듯 모르겠지만 궁금한 배우. 굉장히 뻔뻔스러운데 그게 또 되게 웃기고, 웃기려고 노력하는 것 같진 않은데 어이없게 계속 웃게 되는 그런 스킬을 가진 그런 사람이다. (연기에 관한 감상이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나는 무섭고 센 영화를 잘 못 본다. 고로 당연히 <추격자(2008)>나 <황해(2010)>, <범죄와의 전쟁(2012)>은 보지 않았다. 나에게 하정우는 <국가대표(2009)>고 <러브픽션(2012)>이며 그나마 가장 마초적인 이미지라고 하면 <아가씨(2016)>다. 고로 누군가에겐 상남자일 이 배우가 내게는 그냥 말랑콩떡이었다는 얘기다.

<로비(2025)> 홍보를 위해서 나온 예능에서는 어땠나, 너무도 무해한, 요리 좋아하고 낚시 좋아하는 40대 아저씨 아니냐고.


’하정우식 유머‘는 있다. 정말로 있다. <롤러코스터(2013)>가 비정제된 광산의 다이아몬드라면 <로비(2025)>는 아주 잘 상업화된 모양새고 <윗집사람들(2025)>은 거기에 세련됨을 입힌, 마치 돈가스에 트러플 오일을 올려먹는 듯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허삼관(2015)>을 대하는 태도가 어찌 가볍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시대’라는 장치 속에 가득 숨긴 진짜 날것의 ’하정우식 유머‘를 기대하며 플레이한 영화는, 결국 절정에 다다르며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속상하고 마음 아프고, 처절하고 슬프다니. 이렇게 슬픈 영화였다니! 이건 좀 반칙이다.


영화는 아주 1차원적인 시선들로부터 시작한다.

노동으로 땀을 흠뻑 적신 사내들은 모여서 여자들을 구경하고 품평한다. 시시껄렁한 농담이 오가는 와중에 ‘그런 것에 관심 1도 없다는 듯’한 뾰로통한 표정의 삼관이가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태어나해본 적도 없는 피를 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다 내어주고, 그녀의 아버지와 독대도 하고, 결국 그녀를 얻어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부유한 사내가 되어 떵떵거리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 귀한 아들도 셋이나 있다. 남부러울 게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단 한 마디의 의심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근데 그 집 첫째가 하소용을 점점 닮아가는 것 같지 않아?’


사건을 마주하고 어떻게든 진실을 찾아가며 힘을 뺀다 (그 열악한 시대에 정말 열심히다). 애정과 행복이 가득하던 집 안에는 의심과 미움, 원망이 싹튼다. 그 위에 몇 가지의 양념 같은 사건들이 펼쳐지면서 점점 더 이 가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그제야 영화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숨을 다 걸고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얼굴엔 말라비틀어진 희멀건한 입술, 시커멓게 파여버린 눈 밑만이 보인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좁고 어두운 골목에 구부정하게 널브러진 삼관의 모습에 눈물이 난다. 이렇게 깊은 부성애라니. 내가 하정우에게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그 슬픔에 빠져있었다. 하루가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허삼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깊은숨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니, 정말 재능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직 <허삼관(2015)>을 안 본, 하정우 영화팬이 있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길 바란다.

이 감독, 영화 겁나 잘 만드니까.


ps. 우리 모두 함께 키워 어엿한 성인이 된 다름이는 아기 때도 예쁘고 똘망똘망하다. 흐뭇하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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