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이 Jan 11. 2020

케로로 중사의 귀환

시시하지만 괜찮은 하루 7

 아부지가 개 몽이를 보러 오셨다. 아부지랑 나는 평생 인사말 외엔 나눠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집에서 커피 한 잔 드시고 몽이한테 손 냄새 맡게 하신 뒤 20분 만에 가셨다. 장난감을 한 보따리 두고. 딱 한 문장 하셨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 아부지, 그런데 인간 장난감은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 조카가 아기 때 가지고 놀던 푸우와 친구들, 지구 모양 공과 닭 인형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중엔 내가 조카 아기 때 선물한 ‘케로로 중사’ 인형도 있다. 

 진정 명품이다. 13년 전에 길거리에서 1만 원 주고 산 거 같은데 말이다. 배를 누르면 여전히 ‘케로케로케로케로’하다 케로로 중사 노래가 신나게 나온다. 몽이는 무서워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케로케로케로케로...’

 <개구리 중사 케로로>가 처음 나온 게 2004년이다. 진정 명품 만화다. 외계인으로 ‘퍼렁별(지구)’를 점령하러 온 특수선발공작부대 케로로 중사와 대원 4명(개구리다)의 이야기다. 침략의 전초기지를 마련하러 왔다. 한별이네 집에 문간방을 마련하긴 했는데, 스파이라기보다는, 가사도우미다. 전문이다. 진공청소기와 사랑에 빠진다. 가사노동으로 대체된 침략전쟁이라니! 진지한 만화다. 한 회는 이런 내용이다. 본부에서 지구를 5일 이내에 완전히 파괴할 폭탄을 만들어 설치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사실 지시를 내린 소령은 5일 이내 이 작전을 완수하지 못하면 한 달치 월급이 날아갈 판이라서 똥줄이 탔다. 케로로는 뼛속까지 군인이라 한별이네에서 닷새 휴가를 구걸해 폭탄을 만드는데 내부 분란이 일어나고 만다. 지구와 사랑에 빠진 도로로가 ‘잘못된 지시는 따를 수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 다른 동료들은 양심이 괴롭지만 그래도 군인인지라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폭탄을 만드는데 설치 과정에서 오류가 난다. 소령은 부대가 희생하더라도 작전을 완수하라고 종용한다. 케로로 부대의 안전 따윈 애초에 안중에도 없다. 위기에 빠진 부대를 구하는 건, 동료를 떠났던 도로로다.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원작자는 한나 아렌트인가?

 개구리중사 케로로는 지구인들에겐 털끝만큼 공포를 주지 못하고 오늘도 집안 먼지를 턴다. 바쁘다. 다만 케로로 노래는 지구 개 몽이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는지, 몽이는 소파 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케로로 중사 인형을 입으로 물어뜯던 개 같던 아기, 조카는 올해 중학교에 간다. 케로로 중사를 선물했을 때 나는 방황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구별에서 내가 완수해야 할 작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 뻘짓하느라 정작 밥하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 의미는 밥 짓기 속에 있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옥철'에 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