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무언가에 열광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좋아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아닌 근거가 필요하고, 손가락질을 당해내기 위한 구차한 변명과 또 수많은 증명들이 필요하다. 원하기 위해서, 또한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삶의 방향성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결국에는 비난을 이기지 못해 평범한 사람들 틈에 끼어 살아가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감히’라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화를 내는 방식이다.
‘감히’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 행복하다니.
‘감히’ 나이가 몇인데 취직도 안 하고 그때그때 돈이나 벌어 생활한다니. ‘감히’ 꾸미지도 않고 다닌다니.
‘감히’ 뚱뚱하면서 자신을 사랑한다니.
감히 공부도 안 했으면서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니, 감히 못생겼으면서 잘생긴 사람을 만난다니, 감히 위험한 곳에 혼자 여행이나 다닌다니, 감히, 감히... 마치 그것이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중대한 도덕적 의무를 저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밀이 자유론에서 정리했듯, 현대 사회는 대중의 힘에 입각하여 흘러간다. 소수의 개인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기호와 동의가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에서, 대중의 말, 즉 여론이란 곧 ‘바이블’이다. 소수자는 목소리를 내 기도 전에 인파에 짓눌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범죄를 꺼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 특이한 취향이나 튀는 행동을 꺼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성 있는 사람들을 꺼리고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진부하면서도 정말 명료하다. 꿈을 꾸고 도전하는 삶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니까. 실패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니까 그걸 판단하는 건 대 중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 그들이 끊임없이 옳다 옳다 말해주는 것을 듣고, 하라는 대로 해서 공포와 비난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에는 분명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밀은 말한다.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최선’ 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저 고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옳기 때문이라고.
밀은 말한다. 세계가 정해준 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에게는 원숭이 같이 흉내 내는 것 이외에 다른 능력들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하는 사람은 보기 위해서 관찰력을, 미리 내다보기 위해서 추리력과 판단력을, 결정하기 위해 활동력과 분별력을, 결정을 내린 후에는 실현하기 위한 의지력과 자제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동물로부터 구분되는 모든 능력을 사용하고 동시에 그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원숭이로 만드는 동시에, 스스로 원숭이가 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해악이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예민함의 정도도, 감수성도, 취향도 취미도 모두 다르다. 포텐셜은 나에게 맞는 상황과 환경이 주어졌을 때 최대치로 터질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좋았다고 해서 저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혹은 반대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임과 동시에 소중한 하나의 영혼을 기계 부품으로 변모시키는 일이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영원히 주변으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주변은 큰 힘을 휘두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는 것도, 새로운 직종에 도전하는 것도, 심지어는 작은 취미를 시작하는 것도 주변에게 가로막힌다.
... 그들의 정신 자체가 노예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그것이 아무리 허무맹랑한 백일몽일지라도, 엄지로 대꾸 없는 화면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의미 없는 분노를 생산해 내거나, 눈에 불을 켜고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들의 취미는 짧고 의 미 없는 일시적인 화에 기반하지만, 다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사와 영혼이 있으니까. 또한 ‘최선’이 아니면 어떠한가? 우리는 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미 인간이 되었다.
밀의 말을 빌려 ‘평범한 사람들’ 이 떠오르는 권력이 되고, ‘대중’ 이 떠오르면서 ‘개인’이 소멸하는 시대에, ‘개성’의 가치는 장대하다. 특히나 인문학이 경시되고, 깊게 사유하는 능력 대신 속도와 순간력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깊은 관찰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모든 엘리먼트가 있다. 본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선구자가 되어 삶의 척도에서 앞서나간다면, 언젠가는 새로운 사람들이 그 길을 밟고 삶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론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걷자. 원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