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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1. 2024

게으른 삶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

두 달 만에 퇴근 후 운동을 갔던 5월의 월요일

아침에 운동복을 챙기며 고민했다.

'가지 말까.'

'아, 버스가 제때 와야 갈 수 있을 텐데. 월요일이라 차 막혀서 버스가 늦게 오면 그냥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그럼 이거 그냥 짐이잖아 어떡하지'

'그래도 갖고 가면 갖고 간 정성이 있으니 아득 바득 가게 되려나?'

'아니, 근데 나 저번에 운동복 챙기고서는 운동 안 갔는데.'


운동 가 vs 아냐 가지마의 자아가 열렬히 대립했다. 

운동복이 담긴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하다 핸드폰을 보니 버스 시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운동복 가방을 챙기고 헐레벌떡 출근길에 나섰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역시'하는 허탈함으로 바뀐 퇴근길.

버스는 매번 오는 시간에 왔다. 

NCT127 자컨을 보며 키득키득 대다 보니 어느새 헬스장 근처 버스정류장.

아, 그냥 집에 갈까를 수백 번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하차벨을 눌렀다.


가자. 

일단 가보자.



새해 운동 다짐의 버프가 끝난 걸까, 헬스장이 제법 한산했다.

아닌가 내가 오지 않은 기간 동안 다른 이들의 등록일이 종료된 걸까.


유산소만 하자, 딱 30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분만 하자.


옷을 갈아입고 이어폰을 끼고 물을 담은 뒤 터덜터덜 마이마운틴 앞으로 갔다.

핸드폰을 기구 앞에 던져두고 경사도와 속도를 조절하며 인터벌로 20분을 꽉 채워 탔다.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옆에 놓인 천국의 계단으로 옮겨 탔다. 

분명, 예전엔 높은 속도로 오래 타도 꽤나 버틸만했는데 요새는 1~2분 인터벌을 겨우 겨우 해낸다.


'하!'


너무 힘들면 분으로 가득한 한숨이 나온다. 

'하 씨' '와 씨' '하아'를 반복하며 인터벌로 타다 

핸드폰을 켜 버스 앱을 봤다.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20분 뒤에 온다고 한다. 딱 10분만 더 타자.


타다 보니 욕심이 붙어 목표는 40분이었지만, 버스 배차에 의해 35분으로 마무리 지었다.


대충 땀을 닦으며 식힌 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비 온다는 일기 예보는 없었는데 어딘가 습한 밤공기가 느껴졌다. 

상쾌했다. 가기  전까지 하냐 마냐로 열렬히 싸우던 자아는 '하는 것'에 편을 들었고 그 결과 

소소한 성취가 차곡 쌓인 게 느껴졌다.



거의 두 달간 운동을 쉬었다.

열심히 사는 것에 지쳤다. 생각만큼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결과에 답답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결과를 바랄 만큼 열심히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머쓱하게 눈을 피할 수밖에.


운동을 쉬니 운동이 하고 싶어 졌다. 는 뻥이고 

'딱히 할 것도 없고, 집에 일찍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운동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과

'요새 은근 술약속이 잦아지는 것 같은데, 열심히 마시려면 뭐라도 해야지' 하는 걱정이

나를 헬스장으로 이끌었다.


'열심히'의 기준이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들 때가 많았다.

맹목의 결과는 소진이었고, 그 소진은 종종 나를 허무로 이끌었다.

허무함, 허탈감, 공허함을 느낀 채 둥둥 지내다 보니 '아씨, 이렇게는 못해먹겠다'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쉬었다고 하는 그 시간에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책을 안 읽을 줄 알았지만,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고 

글을 안쓰러 줄 알았지만, 일기를 쓰거나 꼬깃꼬깃 낙서하듯 글을 쓰고 박박 찢어버리며 감정을 태웠다.

헬스장을 가지 않는 대신, 운동 삼아한 두 정거장 내려 천천히 걸어갔다.


막상 또 그렇게 게으르고 나태하게 지내다 보니 

'아 시간 아까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렇게 흘려보내기엔 시간이 아깝고 날씨가 예뻐서 자꾸 사부작사부작 움직였다.


그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달 스케줄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 날'조차 계획하는 애였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내 성질머리 자체가 게으르게 사는 걸 용납 못하는구나.

끝없이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날씨가 좋으면 이 날씨를 만끽하는 게 낭만이지 하며 밖으로 나가고 매번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는 게 마음 편해하면서도 일부러 낯선 상황에 나를 데려가놓고 새로움에 나를 기꺼이 던지는구나. 그냥 천성 자체가 그런 사람이구나.


성질머리를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휴,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하겠어.

앞으로도 하던 대로 꾸준히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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