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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08. 2024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겠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1)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그만 불행해지고 싶다.'


올해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작년 한 해, 현실에 발 붙이고 싶어 악착같이 뮤지컬을 봤었는데

올해는 뮤지컬을 보고 콘서트를 가 뛰어도 삶의 감흥이 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도 잠시 즐거울 뿐 회사로 돌아가면 끈적한 무기력함에 서서히 잠식되고 있었다.


총 4년이었다. 이 업계에 발을 들여 일하게 된 지.

원래도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벌어야 하니까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 업계로 내 발로 스스로 들어왔다.

정신없이 적응하던 6개월, 이별의 아픔을 안고 슬퍼하며 지내던 3개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나를 깨고 부서졌던 1년, 내채공 만기만을 앞두고 악착같이 버텼던 또 몇 개월, 내채공 만기 후 허해진 맘을 달래고자 운동에 미쳐있었던 6개월.


어떻게든 발붙이고 있겠다고 썼던 모든 방법이 소진되자

하얗게 부서지고 가루가 된 내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회사일은 회사일뿐이라고

거기에 큰 의미를 두면 안 된다고.

너와 회사를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숱한 조언을 들었다.


회사 밖에서 다른 경험을 찾아 거기로부터 감정을 느끼고

생활은 이어가야 하니까 회사에서는 적당한 수준만 유지하면 된다고.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 나도 여러 차례 들었던 조언들을

억지로 마음에 꾹꾹 새기며 보냈는데 더 이상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불행해지고 싶었다.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이렇게 매일 같이

끈적한 무기력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둥둥 부유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열등감, 저열한 마음, 부러움, 시기 질투.

불특정 다수를 향했던 미움, 가까운 이들을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던 날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시간, 순간, 하루가 많아졌다.


직장인들은 언제나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 그러지.


코트깃을 여미며 아직 뜨지 않은 해를 바라보며 출근하던 2월의 새벽아침. 남색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 퇴사해야 할 것 같아.

더 이상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올해 6월 말에 퇴사하려고. 결심했어. 진짜 퇴사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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