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승진은, 직급은 대리로 충분해
퇴사하겠습니다 (2)
맘 같아선 당장 퇴사하겠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거짓말처럼 퇴사를 확실하게 마음먹자 회사에서 별의별 일이 다 터졌다. 평화 속 여러 일들이 펑펑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온갖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담고
사람을 미워하고 한껏 저주하며
분노가 풀리지 않아 쉬익 쉬익 열기를 내뿜으며 다녔다.
뭐지, 나 퇴사하는 거 알고 파티하는 거야 뭐야.
세상이 날 억까해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친구들에게 날아갈까
만나도 애써 숨기며 짧게 몇 문장으로 일상을 갈무리했다.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고 아침해가 슬쩍 얼굴을 빨리 드러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연봉협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연봉협상 후 퇴사하는 게 퇴직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본터라
연봉협상까지는 참아보자고 생각했다.
은근한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내가 올해 승진 대상자일까였다.
주임 3년 차가 되면 대리로 승진시켜준다던데
내가 바로 그 3년 차였기 때문이다.
연봉협상을 하던 날, 대리로 승진시켜 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에 내가 대리라니!라는 기쁨보다
'좋아. 이 업계에서 대리가 내 최종이야.'
마무리 온점을 딱 짓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 내 유일한 중간계급
작은 회사에서 나는 유일한 대리가 됐다.
모두가 그날따라 '대리님 대리님' 부르며 장난쳤지만
나는 스치는 바람을 느끼듯 가볍게 웃었다.
무슨 일인지 4월에 회식이 잡혔다.
승진 기념 곧 퇴사할 차장님 송별회 겸 겸사겸사라고 한다.
승진을 축하한다며 잔이 부딪혔다.
예전의 나라면 신나서 곧장 들이켰을 술을
약을 핑계로, 감기를 핑계로 내빼며 조금조금 넘겼다.
머쓱했거든 사실.
올해 6월 퇴사를 염두했는데 이렇게 해주는 승진파티가
어색하고 머쓱했다.
명함이 나왔다.
이름 옆 직급에 '주임'이 아닌 '대리'가 새겨져 있었다.
대리.
대리가 됐다.
그 이상으로 가고 싶다는 욕심이 안 났다.
이걸로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4년의 시간과 승진.
아득바득 버텨왔던 시간의 서사가 접히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이걸로 충분하다.
고생했다.
이제 진짜 그만둘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 대리 승진은
하나의 종착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