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한껏 도망치고 난 후 알게 되는 것들
생일날 호기롭게 강릉으로 도망쳤다.
질리게 바다를 봤고 온 오감을 열어 바다를 담았다.
적당히 따뜻한 모래사장 위에 누워 모래소리를 타고 온 바닷소리를 듣는 건 황홀한 경험이었다. 바다와 나만 존재하는 기분.
용기 내어 혼술을 처음 해봤던 식당과 와인바, 카페에 앉아 쉴 새 없이 많은 감정을 써 내려갔던 것들, 근처 독립서점에서 산 책을 골라 진득하게 읽으며 꼭꼭 문장을 삼키던 순간들, 바다를 등지고 걸으며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위안과 용기를 불어넣었던 길까지. 도망쳤지만 숨통이 틔어 행복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도 잠시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일상은 어쩐지 나를 축축 처지게 만들었다.
의욕 없이 예민함만을 곤두세운 채 지냈다.
뭘 했냐고 물으면 뭘 했다라고 대답하기도 머쓱할 만큼 특별히 한 게 없었다. 스스로에게 주는 유예기간이 자꾸자꾸 늘어났다.
9월 말까지만, 추석까지만, 10월까지만.
온갖 핑계와 합리화로 똘똘 무장한 나는 가시를 세운 채
이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냐며 누구도 묻지 않은 변명을 여기저기 설명하고 다녔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러다, 정말 아주 멀리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말로는 돈 벌러 가는 거야!라고 했지만 본심은 도망이었다.
밤마다 자주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 짓눌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돈을 벌고 회사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 30대라면 적어도 N천만 원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재테크도 해야 하고, 연애도 당연히 해야 하고, 그럴싸한 취미도 있어야 하며 , 끊임없이 읽고 또 써야 한다고 '당연히 해야 함'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책무가 버거웠다.
그래서 도망쳤다 또다시.
바뀐 환경에 적응하며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것 밖에 없었다.
지난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뭐였지?
사람이 힘들었나, 일이 힘들었나. 둘 다 힘들었지만 역시 가장 힘든 건 '맞지 않는 일'을 '적당히 타협하며 합리화하며' 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힘드니 몸도 힘들고 정신도 힘들어질 수밖에.
몸에 맞지 않는 건 역시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럼 어떤 회사가 나랑 잘 맞을까?
어떤 일이 잘 맞을까? 성별이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진 곳보다는 골고루 분포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연령대도 다양한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성과지향주의는 아니지만, 가시적인 성과 혹은 내가 느낄 수 있는 뿌듯함, 성장지점이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일한 일을 매일 반복하는 건 내게 정말 지옥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반복된 일에서 안정감을 얻는다면, 나는 반복되는 일에서 '도태'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매번 만나던 친구들이 아니라 갑자기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던지는 것 역시 '새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아가고자 하는 성향에서 야기되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종종 여러 가지 소셜링을 나가는 거구나. 들여다보니 그때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영어스피킹 시험 기간이 만료된 지 오래됐다.
서류 조건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그럼 영어 스피킹 시험을 준비해야겠다. 시험날짜를 12월 말일로 미루자니 그전까지 탱자탱자 놀다가 벼락치기할 것 같았다. 이왕 벼락치기라면 2주 벼락치기가 낫겠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으니, 결심하고 바로 2주 뒤 시험을 신청했다. 예전에 들었던 강의를 다시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블로그에서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위해 챗GPT를 쓰면 좋다고 한 걸 봤기에 한번 시도해 봤다. 세상에, 신기술 만만세.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답변을 기다리지 않아도 즉각 즉각 나오는 다양한 표현들과 대답에 기분이 들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아서 하는 공부는 역시 재밌구나.
오픽 시험을 끝내고 나니, 문득 오랜만에 한 '공부'가 더 하고 싶어졌다. 그냥 이유 없이 하자니 또 금세 흐트러질 것 같아 이번에는 토익 스피킹 시험을 접수했다. 다시 시험을 기다리며 강의를 들으며
입 밖으로 문장을 내뱉는다. 내 입을 통해 나오는 영어 문장들이 오랜만이라 반가우면서도, '하고 싶어서 한다'는 이 생경함에 마음이 잔뜩 설렜다.
한껏 도망쳐보니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들이 보였다.
도망치지 않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현실들이었다.
마주해야 함을 알면서도 아직 9월이니까, 추석이 오지 않았으니까,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까,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등등
여러 가지 핑계로 잔뜩 물러날 마음들이었다.
그런 마음을 잡으러 쫓아다니니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만 도망칠 때도 됐다, 생각 역시 함께 들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문장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도망친 그곳에 낙원은 없었다. 행복도 평안도 없었다. 잔잔한 우울, 가끔의 행복, 은은한 스트레스와 낙담. 크게 오지 않고 잔잔하게 몰려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꽤나 힘이 셌다. 넘어가지 않겠다고 발가락을 아무리 움켜쥐어도 내가 서있는 땅 자체는 으스러지는 모래였다. 휘청휘청 인 채 거짓 긍정과 합리화로 똘똘 무장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스스로에게 자꾸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설명을 멈추고 들여다본 그곳엔 마주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어떤 문제는 너무 컸고 어떤 문제는 너무 사소 했다.
멀리서 봤을 땐 전부 다 집채만 한 파도 같아 도망쳤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파도는 내 안에 있었구나.
이제는 파도가 칠 때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나의 몸을 키운다.
두 발을 디디고 서있는 곳이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바닥임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주먹을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이 또한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되뇐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두려움은 나보다 훨씬 컸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 큰 사람이었다.
낙원 대신 마주한 현실의 문제들을 바라보며 털썩 주저앉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시간을 들여 해결해야 할 일,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점점 작아졌다.
작아진 파도는 어느새 잔잔한 물결이 됐다.
해결한 문제는 성취라는 해를 받아 윤슬이 되어 반짝였다.
해결했다는 성취와 '별거 아니잖아' 하는 약간의 기분 좋은 허무함.
그 양가감정을 가득 안으며 다시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이제 다시 현생을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