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여전한 이 가로줄을 쓰다듬으며
종종 볼 안쪽을 혀로 쓰다듬을 때가 있다.
왼 볼 안쪽을 살짝 쓰다듬자 가로로 긴 줄이 뾱 튀어나온 게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또 고민이었고 무거웠니
의식적으로 종종 볼 안쪽을 혀로 쓸어보는 건 저 짤을 보고 난 후부터다.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의 파도에 몸을 둥둥 맡긴 채 이런저런 소식을 훑어보던 어느 날, 벼락같이 마주했던 짤.
나는 그냥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침마다 쓸어본 볼 안쪽엔 여전히 볼록 긴 가로줄이 항상 있었다.
나는 정말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으니깐.
'일단 대충 시작해'가 전혀 되지 않았던 나이가 있었다.
이왕 하면 잘하고 싶고, 내가 이만큼 잘했다는 거 보여주고 싶고,
그러다 보니 더더욱 준비만 하게 되고, 동시에 '준비하는 나'의 '가능성'에 취해 실상 이루어낸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에 취해있었던 시기였다. 준비조차 열심히 했었으니깐.
그때 나는 인정욕구가 정말 큰 사람이라 아닌 척했지만 꽤나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시기 이기도 했다.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야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고, 소외된 이들이 없게 모두를 챙기고자 노력했다, 많이 읽었고 자주 표현했으며 꾸준히 쓰고 또 썼다.
내가 좋아한 것, 애정을 가진 모든 것에 시간, 돈, 관심을 쓰며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배터리처럼 '열심히' 쓰고 또 썼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갓생이네 갓생이야' 그런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했다. 봐, 나 이렇게 열심히 삶을 살고 있어! 난 내 삶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있어! 잔잔하게 스며든 우울을 이 악물고 무시하며, 정작 들어야 했던 가장 작은 마음의 소리들엔 노이즈 캔슬링을 적용한 채, 모든 걸 많은 걸 '열심히 대단히 성실하게' 했던 시간들.
그때 내 볼 안쪽엔 언제나 긴 가로줄이 항상 있었다.
벼락같은 짤을 만났던 날, 볼 안쪽을 슬쩍 훑으며 어쩐지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다. 뭔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같았기에.
하지만 로봇도 고장 나고 기계도 멈추기 마련이고
이 커다란 지구조차 긴 세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휴식과 활동의 사이클을 오갔는데 매번 활동기를 맞이할 순 없는 노릇. '나 힘들어'라는 말을 끝끝내 내뱉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 채
'열심히 사는 나'에 취해 살던 어느 날, 찰랑이는 소맥이 담긴 유리잔을 친구와 챙 부딪혔던 어느 겨울, 기침처럼 말이 툭 나왔다.
"나 힘들어. 사실 불안해. 무서워."
이 말을 하기까지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릴 줄이야.
그때 알았다. 나는 정말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애구나, 지고 싶어 하지 않구나, 상대가 사람이든 세상이든 하물며 그게 내 인생이 든 간에.
내 인생에 내가 지기 싫었다. 나한테 내가 지는 게 싫어서, 내가 힘들다고 인정하는 순간 내가 선택했으면서 도망친다는 기분이 들어서, 내뱉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하다못해 힘들다는 문장을 쓰는 것조차 싫었다.
알고 있었고 듣고 있었다. 염려의 소리들을. '괜찮아, 할만해. 다 이렇게 살아. 새벽의 출근하는 이들을 보면 같은 동지라 위로가 돼'
이런 말로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이겨낸 척했었다.
미친 듯이 뮤지컬에 매진했던 것도, 어느 날엔 모임에 빠져들어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와 경험을 늘렸던 것도, 일 년에 100권 넘는 책을 읽고, 한 달에 12권씩 책을 읽었던 것도, 내 감정을 내가 못 이겨 혼자 울다가도 '할 건 해야지' 하며 하던 일을 마무리 짓던 것도, 첫차 타고 출근해 공복 유산소를 하고 출근 후 퇴근 후에는 PT를 받거나 근력운동을 했던 그 미친 날들도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이었다. 그래야만 했던 날들이었다.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니 되려 허무했다. 뭐야, 이거 되게 쉬운 거였네.
'으이그 힘들지. 당연하지' 그 한마디에 모래성처럼 쌓아 올린 나의 열심히가 조약돌로 데구루루 퍼진 순간. 마모된 내가 끌어안았던 나의 얼기설기 만들어진 노력의 성. 그제야 이해가 가던
'이젠 힘들면 그냥 져요'의 문장들까지. 지기 싫었고 질 줄 몰랐던 날들에 내가 보낸 하얀 수건이었다.
요즘도 나는 볼 안쪽을 쓸어본다.
퇴사 후 잠깐 볼 안쪽이 평평했던 것 같은데, 어쩜 다시 '현생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잡자 다시 가로줄이 볼록 나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랬던 날들에 아쉬움과 후회를 담기보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음을 받아들인다. 좀 더 잘할 걸, 대신에 '그땐 그게 내 최선이었어, 그게 내가 만든 나의 날들이었어' 내가 나에게 보내는 패배의 인정. 그건 아마 내가 그만큼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감정이었을 거다. 패배를 인정하고 불편하면 고쳐 앉으며 생각한다.
'자, 뭐에 그렇게 힘을 주고 있지. 생각해 보자.
여전히 새벽 늦게 겨우 잠이 들고, 머릿속은 24시간 비상체제다.
머릿속을 열어볼 수 있다면 아마 세상에서 제일 바쁜 공장일 거다.
볼 안쪽을 쓸어보며 힘이 바짝 든 몸에 애써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해결할 수 있어. 져도돼. 져도 상관없어'
이제야 패배를 인정한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년 간, 꺼지지 않는 이 가로줄을 여전히 혀로 쓰다듬으며
내가 나에게 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썩 나쁜 결말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건네면서 말이다.
오늘은 푹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