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실둥실 유영하는

이것이 삶의 속도라면

by 블레어

들뜬 기분이 유지된다.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시작점이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봄까지만 하더라도 계속 곤두박질쳤는데.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다. 박차고 올라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힘이 나지 않았다. 수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대로 가라앉다 보면 바닥에 닿겠지. 그때 발을 구르자 라는 마음으로.


보글보글 숨 쉴 잠깐의 틈은 주어졌다. "각설이처럼 또 왔다 솜아"라고 오는 연락이, "너 내일 카페와. 무화과 얼그레이 한 판 해놨어 먹어. 먹고 가"라는 무심한 다정함이. 이른 아침 출근길에 "네가 담담해서 내가 다 마음이 아파"라는 얘기가. 몇 개월 만에 거는 연락에 눈물부터 나와 울었는데 "무슨 일이야! 네가 왜 혼자야 왜 얘기 안 했어!" 다그치는 애정 어린 소리가. "일단 먹어. 너 뭐라도 먹여야겠다" 내 앞으로 넘겨오던 수플레 접시까지. 보글보글 잠깐 숨을 내뱉고 나면 다시 아래로 침잠했다.


바닥에 닿은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지루해"


발을 세게 굴러 손을 펼쳤다. 세상은 내게 기다렸다며 환한 햇살을 기꺼이 한껏 쏟아 내렸다.



갑자기 마구마구 친구들을 만났다.

지나온 서사를 풀어놓으며 비우고 또 비워냈다. 더 이상 게워낼 게 없을 때까지 비워냈다. 이것보다 더 채우는 건 무리였고 이미 찰랑이다 못해 넘치고 있었기에.

어플을 뒤지다가 일일 독서모임을 나갔다.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는 어떤 마음인지 어떤 문장을 필사하고 싶은지. 필사한 문장을 서로 나누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일상 얘기를 하며 공감대를 나누고 글을 나누었다.


그 해 연말에는 편지를 썼다. 매 번 보내는 새해 카톡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편지가 쓰고 싶었다. 그저 그대들이 내게 보여준 관심과 다정에 나는 이만큼 괜찮아졌고 무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방을 가득 메운 잡동사니를 덜어내고 옷을 버렸다. 책을 정리했다. 마음을 일렁이게 하던 문장을 써 내려가며 감정을 갈무리했다. 혼자서 감당되지 않는 밤에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날것의 글을 쓰기도 했고 메모장에 분노로 글을 휘갈기고 한껏 후련해지면 다 지워버렸다.


그렇게 덜어내고 또 덜어내고 비우다 보니 채우고 싶어졌다.


새로운 것들로. 새로운 사람들과 생각과 시간들로.


그래서 기꺼이 용기를 내어 발을 디뎠고 움직였다.

앞으로의 글은 용기로 인해 생겨난 감정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잊을 수 없는 한 해였기에,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기에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다채롭게 채우고자 써 내려간다.


용기가 모여 두둥실 피어오른 감각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흐르듯 유영하기로 했다. 이 감각의 끝에 무엇을 깨달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