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걸 늦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스물아홉에 시작한 대외활동

by 블레어

[○○카드 210,000원 결제되었습니다.]


띵동 소리와 함께 결제내역 알람이 떴다.

오, 질렀다. 질러버렸어!

PT에 거금을 투자해본 이후 처음이었다.

날 위한 활동에 거금 투자는.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문득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매번 똑같은 이야기 일상 고민을 나누는 것 말고 좀 더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길게 고민했다. 마침 그때 일일 독서모임에서 얻었던 즐거운 경험이 떠올랐고, 이번엔 멤버십으로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알고리즘은 무서웠고 광고효과는 굉장했으며 추진력을 얻은 이는 두려울 게 없었다.


여느 때처럼 "하 진짜 누구부터 패야할까"를 되뇌며 돌아가던 퇴근길. 알림이 울렸다.


자그마치 20명이 꽉 들이 찬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대외활동 모임의 시작이었다.


클럽 내 규정이라며(?) 어색한 지목과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날 지목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초조해하던 찰나에 누군가 지목해주었고 읽음 상태였던 나는 재빨리 뒤로 가기를 눌렀다. 어쩌지 어쩌지 뭐라고 써야 하지? 서평이나 편지를 쓸 때는 거침없이 내려가던 글이 단박에 멈추었다. 고민 고민하다 후루룩 써 내려갔고 프사를 염탐하며(?) 잘 받아줄 듯한 이를 지목했다.


아, 나가고 싶다. 그게 첫 단톡방의 소감이었다.



이 옷을 입었다 저 옷을 입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첫 모임이니까 단정하게. 슬랙스와 티를 입고 화장을 하고 강남으로 향했다. 모임은 3시 도착은 2시 즈음.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그 앞 의자에 앉아 멍 때리며 아아를 끊임없이 수혈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나. 그만할까. 나갈까. 지금 나가면 100% 환불이 아닐까? 호기로웠던 추진력은 다가온 현실 앞에 점점 바스러지고 있었다.


집 가고 싶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보자. 마음으로 45분쯤 일어났다. 이 건물인가. 돈 많이 벌었나 보네. 강남에 단독 건물이라니. 그게 첫인상이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맨 앞에 앉아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인사가 온다. "안녕하세요" 꾸벅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앞에 놓인 종이와 펜 그리고 명찰을 챙겼다.


어색해 어색해서 미쳐버리겠어 지금이라도 안 늦었나.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다가 종이나 실컷 읽었다.

사실 무슨 글인지 내용인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였으니.


점차 한 두 명씩 들어온다. 텅텅 비었던 의자가 채워지고

마치 새내기 ot처럼 경직된 2030 대가 빙 둘러앉아있었다.


이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이는 파트너였다. 첫 모임의 경험이 좋게 남아 용기를 내어 파트너를 신청했고 이렇게 주최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스 브레이킹용 카드(?)라며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책 얘기를 하긴 했는데, 사실 책 내용 자체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를 나오게 하는 책이었다. 음, 그래 알겠어. 근데 뭐? 이런 결론을 짓게 하는 열린 결말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책. 그래서였을까. 피 터지는 토론도 새롭고 신박한 의견도 없었다.


양 옆에 앉은 이들에게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한 분은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대학생.

서로 어색하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색한 상황에서 나오는 극강의 사회성은 그들을 뒤풀이까지 함께 가는 데 성공시켰다.



MBTI부터 사는 곳, 직장까지.

거진 소개팅 수준이었던 첫 모임의 뒤풀이.


잠시 바람 쐬러 나가자고 해서 처음 말을 나누었던 선생님과 대학생 친구와 밖으로 나섰다.


살다 살다 어색함에 다리가 후들리는 건 처음이었다.


주종 뭐 드세요?- 하길래 소맥이요. 하고 꽤나 연거푸 소맥을 들이켰는데 하나도 안 취했다.


어색함은 술도 안 취하게 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화장실 겸 바깥바람 쐬기를 다녀오니 자리가 바뀌어있었다.

옆 테이블 같은 모임 멤버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얼레벌레 첫 모임의 뒤풀이가 마무리되어간다.



21만 원.


머릿속에 21만 원이 맴돈다. 내가 큰 기대를 한 탓일까?

뭘 기대했었던가.


치열하고 열렬한 책 토론을 기대했었나?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었나?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인연들을 기대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책 이야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웠다.


매 달 4번째 토요일 3시.


나는 이 시간을 그들에게 기꺼이 내줄 수 있을 것인가?

안 내주면? 뭐할 건데?


뭐하긴 친구 만나거나 누워있겠지.


첫 뒤풀이에서 구석에 앉아 잔뜩 기가 빨린 채 고군분투하던 리더를 보니 좀 더 믿어볼까 싶어졌다.

한국인은 삼세번 이래잖아. 한 번 가봤으니 두 번 남았다.

딱 세 번. 그리고 판단하자.


첫 모임에서 안면을 트고 말을 나눈 이들은 탈퇴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첫 술자리 같이 앉은 테이블에서 나와 리더를 제외하고 모두가 탈퇴했다.


원래 이렇게 쉬운 건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이고, 그냥 좀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남았다. 그리고, 가기 싫어 몸부림치던 두 번째 만남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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