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걸 늦바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두 번째 모임 : 혼란스러운 모임의 정체성, 여기는 뭘까요

by 블레어

돌이켜보면 가끔 삶은 '얼레벌레' 이어지는 일들이 많다.

음, 어떻게 이게 이렇게 실현되고 작동되지? 싶은 그런 일들.

그러니까, 시작은 자원이었다.


4주마다 모이는 모임의 어색함을 타파하기 위해 모임은 2주에 한 번 만나기를 필수적으로 권장했다.

2주마다 만나게 될 모임을 추진하는 이들을 리더 제외하고 따로 뽑았는데 문제는 지원자가 없었다.

남녀 성비가 엉망(?)이었으나, 남자 측에선 지원자가 나왔고 여자 측에서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침묵과 적막. 고요 그 자체.


리더는 사다리 타기를 통해 정하겠다고 했고 모두 다 순응했다.

'나만 아니면 돼.' 하는 마음으로.

노래 가사에도 그런 말이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러게. 나만 아니면 돼!!라고 강하게 기도했는데 왠지 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몰려왔다. 사다리 타기가 단톡방에 공유되고 결과가 도출된 후 나지막이 불린 건 내 이름이었다.


"네?!!!!"


조용한 방안을 가득 채운 소란스러움. 그래. 나라고? 나란 말이지. 역시 나갔어야 했나.


하필 나는 첫 모임에서 이런저런 책 이야기부터 개인 이야기까지 잘 꺼낸 사람이었고

하필 첫 모임에서 꽤나 많은 이들이 내 이야기에 공감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었고

첫날 MVP(?)에게 준다는 쓸데없는 선물을 받은 것도 나였다.

마치, 이 모든 판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시사하듯.

얼레벌레 2주 모임의 준비위원이 되고 2주 후 새로운 단톡이 파졌고 나는 이를 꽉 물었다.




나는 이런 리더 재질의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왜 조별과제는 사회의 악인지 졸업 이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의견 조율이 어떻게 어떻게 되기는 했으나 만나는 전 날까지도 나는 가기 싫어 몸부림쳤다.


어색함이 가득한 자리에 나를 던지기가 싫었다. 있는 사회성 없는 인싸력 다 끄집어 내 어색함을 깨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상황도, 어색해서 뚝딱 거리는 모습도, 돌아오는 길 느끼는 진한 현타까지. 모든 게 복합적으로 버거웠기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리더에게 "꼭 가야 하나요", "저는 필참인가요?"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그럼요" 였다.

많이 도와주겠다는 리더 말에 '그럼 믿어보겠습니다'로 대답하고 끌려가듯 두 번째 모임에 나갔다.




약속시간이 다다라도 도착하지 않는 사람들. 불참을 얘기한 사람들까지.

오호라 이게 맞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색하게 전철역 밖 계단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렸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인데,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난 그들에게 정을 줄 생각이 없었기에 다소 언짢았으나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었다.

1명의 불참, 2명의 뒤풀이 참여. 6명이서 먼저 만나 장소를 이동했다.


우리의 목적은 최인아 책방. 대형서점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독립서점 체험이 목적이었다.

선릉에 있는 최인아 책방을 가기로 약속하고 모였는데,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 있는 행사에 의해 독립서점 이용시간은 4시 반까지였고 우리가 만난 시간은 5시였다.

우린 이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고 운수 좋은 날이라고 표현해요.


절망과 패닉 그 자체.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거리다가 카페라도 가자고 얘기가 나왔다.

토요일의 선릉역 카페는 왜 사람이 많은 건지.

대학생 때 이후 거들떠도 안 보던 엔젤리너스가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았고 다급하게 여기라도 가자고 얘기를 했다. 각자 음료를 주문하고 큰 테이블에 앉았고 우리는 각자 사주 어플을 켰다.


오늘 운세를 봐야 한다면서.


그날 운세가 좋았던 이가 다수였다. 운세가 좋지 않은 이는 소수였는데 우리는 이 소수의 기운이 너무 셌던 게 아닐까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점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각자 2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사는 건 어떤지, 뭐하고 사는지 근황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어갔고 다 같이 자리를 정리하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웨이팅이라니요. 도대체 선릉은 뭐하는 곳이길래 주말에도 사람이 많은 거죠.

밖의 대기석에 앉은 채 순번을 기다리다 겨우 식당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우린 난장판 그 자체였던 식당을 목격했다. 흡입하듯 술과 음식을 먹고 후다닥 밖으로 나와 2차로 향했다.

도저히 거기선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녔기에.


다행스럽게도 선릉역은 나의 회사가 있는 곳이었고, 여기는 내 구역이었기에 (?) 은밀하게 단골 술집을 알려줬다. 적당한 음악과 적당한 소란스러움. 넓게 앉을 수 있는 자리까지. 여기다 싶은 채 안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또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몇 병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술병이 비워지면 술병이 채워졌고 잔이 바닥을 드러내면 새로운 술이 채워졌다.


자, 누누이 말하지만 저희는 독서모임입니다.




몇 잔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술을 마셨다.

몽롱한 기분으로 3차를 따라갔다 막차를 타기 위해 먼저 밖으로 나섰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금 모임 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됐다.

이게 독서모임인지, 술 모임인지, 사교모임인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

앞으로의 결정사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렀고 세 번째 모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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