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 테크노-중화제국
‘민족-국가’는 근대를 지배하는 상징적 개념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는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영토와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을 넘어, 점차 ‘데이터’와 ‘네트워크’라는 비가시적인 변화 위에 놓인 미증유의 시대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이 소환한 이름은 뜻밖에도 오래된 개념이다. ‘천하(天下)’, 이는 국가라는 틀로 한정할 수 없는 문명적-제국적 질서를 의미한다. 문명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흐름이다. 문화와 윤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다.
중국은 이 오래된 개념을 디지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적 기반 위에서 다시 소생시키고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것은 영토의 확장이나 민족주의적 패권이 아니다. 중국은 자신들의 기술이 구축한 데이터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흐름을 통해 신문명 질서를 창건하고자 한다. 즉 ‘디지털 천하’(Digital- 天下)라는 신문명을 창건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은 디지털 천하의 중심에 우뚝 서 전 세계를 관망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연결하는, 데이터에 의거한 디지털-세계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기술기업들은 5G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신경망을 설계하고 있다. 이를 기술 공급이나 상업적 이익이라는 자본의 논리만으로만 본다면 실상을 면밀히 파악할 수 없다. 중국은 기술적 확산을 통해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질서의 확장을 도모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교화(敎化)’라 불리던 현상을 디지털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디지털 플랫폼은 다양한 국가의 시민들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구축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하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민들이 알리페이로 금융 거래를 하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디지털 생태계에 편입되고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도시 인프라가 중국의 디지털 기술로 효율화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중국적 현대성이란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디지털 천하는 기술과 윤리,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질서를 융합한 거대한 문명적 실험이다.
이러한 모험적 착상과 실행이 가능한 배경에는 중국의 오랜 문명적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천하의 개념은 정치적 지배를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질서를 위한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으로 작동했다. 디지털 시대의 중국 또한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천하에 새로이 접근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한 생활의 편리함, 알고리즘을 통한 사회적 조화, 플랫폼을 통한 공동체의 연결은 중국이 생각하는 ‘천하의 교화’를 디지털적 방법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는 산업문명적 국가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문명적 질서의 출현을 시사한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러한 문명적 실험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새로운 디지털 윤리는 과거의 윤리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을 터, 그렇다면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인간의 생활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디지털 천하’를 마냥 찬양하기 위함도, 맹목적으로 비판하기 위함도 아니다. 전통적 국가 개념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의 세계 질서가 등장하는 순간을 목도하며, 반드시 마주해야 할 필연적 물음인 것이다.
결국 중국이 천하라는 오래된 개념을 디지털 시대의 핵심 개념으로 다시 불러낸 것은 인류가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근대산업문명이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발명했다면, 디지털 혁명은 다시 문명과 제국을 상기하고 있다. 천하는 중국만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가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달하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적 질서다. 앞으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질서가 어떻게 재편될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다.
이제 이 오래된 이름, 천하의 귀환을 진지하게 직면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천하의 개념은 기존의 세계를 급격히 전환할 것이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규칙 기반 질서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연결과 교류를 촉진할 것이다. 중국의 '디지털 천하' 신문명 실험이 성공할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에 부딪혀 좌절될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질서의 창발을 대하며, 스스로의 입장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천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를 직시하고, 시대적 조류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이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까. 반전의 시대, 역시나 역사는 돌고 돈다. 시대가 다시 아시아로 귀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이름은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세계 속에 다시금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