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미국의 신화와 운명

미국의 미래: 디지털-로마제국

by 소묘

이야기를 오래전 로마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공화정 로마는 오랜 시간 동안 귀족들의 타협과 민중의 봉기, 원로원의 숙의와 장군들의 야망 사이에서 명운을 이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역사는 인물에 의해 굴절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체제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사람이었다. 갈리아 정복으로 얻은 명성과 부,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원로원 체제를 조롱하며 들어선 그는, 로마 공화국의 마지막 날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가 되기 전에 죽었다. 브루투스의 칼날 아래서.


그러나 제국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카이사르가 남긴 권력의 유산, 체제의 공백, 영광의 기억을 한 사내가 계승한다. 옥타비아누스, 그는 카이사르의 양자였고, 탁월한 전략가였다. 훗날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그는 공화정의 형식을 유지한 채, 실질적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황제가 아니면서 황제였고, 시민이면서 신이었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늘 등장하는 그런 존재, ‘변신(變身)’의 정치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미국의 역사적 전환기를 목격하고 있다. 단극세계의 피로가 가득한 이 시점에, 미국이 다시 로마 제국의 역사를 회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공화국의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권력은 관료제에 붙잡혔고, 자유는 무질서로 변질되었으며,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다. 절체절명 일촉즉발, 내분과 내전의 불씨가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던 것이다. 분열의 시기, 분노의 시대인 것이다. 그 격동과 격정의 파도가 만들어낸 지도자가 바로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육신에 담지한 인물이었다. 그는 거침없는 말과 사정없는 트윗으로 억눌려 있던 기층 민중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광장의 황제로 등극하였다.


트럼프는 미국판 카이사르다. 그는 철옹성 같던 미국의 기성 체제를 허물었다. 워싱턴 자유주의 기득권에 균열을 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파괴를 향한 야수적 힘을 회복을 위한 소생적 기운으로 전환할 면밀한 설계도가 부재하다. 여기서 J.D. 밴스가 등장한다. 로마사에서 아우구스투스가 그랬듯, 밴스는 무너진 공화국의 폐허 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밴스는 트럼프의 정치적 계승자이면서도, 새로운 미국을 설계하는 철학적 이데올로그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미국, 즉 디지털-로마 제국의 뼈대는 기술이며, 심장은 영성이다. 알렉스 카프가 이끄는 팔란티어는 미국 연방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재정의하려 한다. J.D. 밴스는 팔란티어의 기술적 기반 위에 공동체 중심의 가톨릭적 윤리를 덧입히려 한다. 팔란티어의 알고리즘은 행정을 자동화한다. 밴스의 신학은 인간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이 결합은 서구 자유주의가 전통적으로 분리해왔던 신과 권력, 기술과 도덕, 정치와 형이상학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시대는 다시 전통과 제국을 호명하고 있는가? 미국이 기술과 영성이 결합한 새로운 제국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전 역사의 제국들과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제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명적, 제국적 기획에 단호히 맞서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역사를 돌아보며 공동체-국가-세계의 설계도를 새롭게 조직해 나가야 하는가? 문명적 서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자,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 질문이다. 카이사르가 공화국을 해체했듯, 트럼프는 미국이라는 '절차적 이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을 열었듯, 밴스는 새로운 '정체성의 합성물'을 설계하고 있다. 기술(Techné)과 신앙(Theos), 이 두 원소가 재조합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로마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잔상은 기억 저편에서 나지막이 울려퍼진다. 트럼프와 J.D.밴스, 팔란티어와 가톨릭, 알고리즘과 신국, 미국은 지금 그들이 믿어왔던 자유주의적 신화를 철저히 깨부수고, 기술과 영성에 기반한 신화를 새로이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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