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종속의 목줄은 은근하게 다가온다
이번주 초, 펜타콘의 한 국방 전략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앞으로 미국은 중국 위협에 대한 대응보다 미국 본토, 즉 아메리카에 치중한 안보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이 보고서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장관에게 직접 보고되어 큰 화제를 모았는데, 그간 트럼프의 대외 기조와 대치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해당 전략 보고서를 주도한 인물은 앨브리지 콜비 국방부차관으로 알려졌다.
이 뉴스가 공개된 후, 해당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역 패권을 인정했다, 세계를 운영하는 제국을 포기하고 지역 패권 국가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등등 미국 패권의 몰락과 트럼프의 현실 자각이 주된 내용이었다. 표면상의 내용으로만 보면 실견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는 지점이 남아 개운치가 않았다. 정말 미국이 세계 패권국이기를 포기했는가? 전혀 아니다. 특히 트럼프 2기에 결합되어 있는 실리콘밸리 유신 세력은 미국의 패권을 지키고자 하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피터 틸, 알렉스 카프, 팔머 럭키, 알렉산더 왕은 공개석상에서 수차례 대만 위기, 러우전 등을 상기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상정하고 압도적 기술력을 통해 권위주의 국가의 도전에 응수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들은 결코 미국이 아메리카 지역 국가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디지털 문명 시대, 도전자를 완전히 제압하고 미국이 새천년의 패권 국가로 영속하기를 갈망하는 이들이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팔란티어, 안두릴은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대만, 한국, 일본에 법인을 세워 동아시아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심지어 팔머 럭키는 타이완국립대학교에서 대만 최고의 수재들에게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자! 우리가 함께 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내며 동지애를 고취하였다.
또 주목할 지점은 해당 전략 보고서를 이끌었다는 앨브리지 콜비도 대표적인 대중 강경 노선을 주창하는 외교 인사라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껏 유럽과 중동에 쏟아부었던 낭비적인 국방 예산과 전력을 회수하여, 앞으로 지정학적 격돌의 중심이 될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즉 다른 지역은 포기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미국이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라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이런 인물이 중국의 부상을 용인하고 지역 국가로의 후퇴를 자기 손으로 전략을 세웠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앞뒤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한 뇌피셜이다. 2가지 큰 전략적 지향점이 있다고 본다. 첫째, 중국에 대적하기 전에 미국 내부 먼저 평정한다. 둘째, 미군이 했던 세계 경찰의 역할은 이제 팔란티어, 안두릴을 비롯한 국방 스타트업이 대체한다.
미국은 전시 체제로 이행하는 중이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기억을 상기하며, 정부가 주도하여 산업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연방 정부가 주 정부의 자치에 개입한다. 이들은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그 이상의 군사력과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시장 자유주의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당장 내년에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고민이 깊을 것이다. 제 아무리 민주당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반트럼프 정서가 들이닥치면 삽시간에 의회에서의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미 트럼프 1기 당시 행정부는 공화당, 입법부는 민주당이 장악하며 커다란 병목이 발생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움직임에 단호하게 대처할 작정을 하고 있다. 이미 LA, 워싱턴 DC, 시카고에 연방군을 배치하여 치안을 관리한 전력이 있다. 구실은 불법이민자 퇴거 및 범죄 관리였지만 반대파 억제라는 명목도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전국적인 반트럼프 시위의 신호가 감지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국적으로 연방군을 파견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 모른다. 허나 현재 미국 내 연방군의 병력이 본토 전체를 관리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해외 미군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일 수 있다. 미국을 불안정을 일소하고, 다시 중국을 겨눈다. 트럼프가 ‘계엄’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미군의 철수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 공백은 누가 메꿀 것인가? ‘미군의 철수’와 ‘미 국방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20세기형 군사 전략에서 탈피하여, 21세기형 신형 군사 전략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알렉스 카프, 팔머 럭키는 줄곧 미국이 국방에서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안일한 관점을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앞으로 전장에서 중요한 것은 구형 탱크, 전투기, 핵 미사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긴밀하게 연동되는 인공위성, 무인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등의 신형 무기의 개발과 확산이라는 것이다. 핵 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열린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지배한다. 고로 소프트웨어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쪽이 지배력과 협상 주도력을 확보한다. 이러한 판단 하에 앞으로 전장의 주변 변수인 미군 병력을 국내로 돌리고, 핵심 변수인 스타트업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대만, 한국, 일본의 주요 기간 산업 기업에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기업에서의 확실한 성과를 매개로 신뢰도를 확보하여 시∙도 등 지방 행정부터 입법부∙행정부 등 중앙정부까지 진출한다. 안두릴을 비롯한 국방 스타트업은 신형 무기 체계를 공급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내 동맹국들의 뇌와 몸통을 완전히 장악하여 중국을 견제한다.
실제 이행이 어떻게 이뤄질지는 두고볼 일이나, 만일 위와 같은 생각 하에 미국 수뇌부가 움직이고 있다면 한국은 정신 바짝차려야 할 것이다. 까딱하면 국가의 주권을 미국과 팔란티어에 갖다 바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침략은 무력 침공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주 매력적인 표피를 둘러싼 ‘디지털 신기술’의 모습으로 유혹하고 매혹하는 것이다. 그 기저에 어떤 목적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한국은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식민지가 된 줄도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제국의 의로운 민족으로 살 것인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할 것인가? 앞으로 10년이 역사의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