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이란 무엇인가?
서론 「군중의 시대」
1. 문명의 대격변과 사상의 변화
르 봉은 인류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이나 왕조의 몰락과 같은 가시적 격변보다,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가 훨씬 더 중대한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의 큰 줄기를 바꾸는 사건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된 사상의 변화가 낳은 결과물이며, 이러한 변화는 한 민족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안정적인 사상적 토대가 흔들릴 때 발생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역시 그러한 중대한 사상적 전이의 순간에 처해 있다. 이 변화의 근저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서양 문명을 지탱해 온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신념의 붕괴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생존 조건과 생각하는 환경이 크게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상은 힘을 잃어가고 있으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은 아직 형성 중인 이 과도기는 필연적으로 혼란을 수반한다.
2. ‘군중의 시대’로의 진입
과거에는 절대권력을 가진 군주나 소수 엘리트들의 의지가 역사를 이끌었으나, 이제는 군중의 목소리가 국가의 정치를 결정하는 주된 힘이 되었다. 르 봉은 과거의 모든 신념이 무너지고 권력의 잔해만 남은 자리에 유일하게 우뚝 솟아 위세가 커져만 가는 세력을 ‘군중’으로 정의하며, 우리가 맞이할 세상을 ‘군중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무의식적 군중의 행동이 의식적 개인의 행동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군중은 이성적으로 추론하기보다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의 힘이 현대 사회의 정치적 전통과 군주의 경쟁 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3. 민중계급의 등장과 정치적 변화
민중계급이 정치 세계에 등장하여 지배계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보통선거나 연합의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군중 세력은 특정한 사상이 사람들의 정신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개인들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점차 연대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오늘날의 군중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경제 관련 법을 무시한 채 노동 조건을 결정하려 하거나, 모든 재화의 공평한 분배와 상위계급의 타도를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르 봉은 이러한 군중의 요구가 문명 이전의 원시 공산사회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군중은 이성적 추론 능력은 부족하지만 행동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며, 그들의 이념은 과거의 사상들이 가졌던 절대적 힘을 갖게 되어 군주의 신성한 권리를 군중의 신성한 권리로 대체하고 있다.
4. 군중의 파괴적인 본성과 역할
르 봉은 문명을 세우고 이끌어 온 것은 언제나 ‘소수의 지적인 귀족’이었으며, 군중은 오직 파괴하는 힘만을 가졌다고 단언한다. 문명은 엄격한 규율과 본능에서 이성으로의 전환, 미래에 대한 예측 등을 전제로 하지만, 군중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중은 마치 쇠약한 육체를 분해하는 세균처럼 활동한다. 어떤 문명의 도덕적 세력이 영향력을 상실하고 노후화되면, 군중은 등장하여 그 문명을 해체하고 완전히 무너뜨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르 봉은 이러한 파괴 행위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기 전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 혼란기라고 보았다.
5. 군중심리 연구의 실질적 중요성
르 봉은 군중의 행동이 지적으로는 열등해 보일지라도, 그 뒤에는 고대부터 내려온 ‘신비로운 잠재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언어와 같은 복잡하고 논리적인 체계가 군중의 무의식적 정신의 소산이라는 점을 들어, 군중의 무의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군중심리에 대한 지식은 지배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방책이 되었다. 군중은 이론상으로 공정한 법보다 인상 깊고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것에 의해 움직인다. 르 봉은 세법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이론적으로 가장 공정한 누진세라 하더라도 목돈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면 군중은 강력히 저항하겠지만, 매일 소비하는 물건에 부과되는 미미한 간접세는 비록 그 총액이 높더라도 군중의 습관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는 군중이 미래를 대비해 경제 행위를 할 능력이 부족하며, 순수이성보다는 감정과 암시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
르 봉은 군중에 관한 연구가 실질적 측면뿐 아니라 인간의 행동 동기를 추적하는 학문적 호기심 차원에서도 광물이나 식물을 연구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존의 편견이나 학설을 배제하고 순수한 과학적 관찰을 통해 군중의 정신 구조를 분석하고자 했다. 군중심리는 역사적·경제적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학문이며, 이를 알지 못하고서는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복잡한 시대의 사건들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다. 르 봉은 자신의 연구가 이 미개척 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를 희망하며 서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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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군중의 정신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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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군중의 일반적 특성 — 군중의 정신을 단일화하는 심리 법칙
심리학적 관점에서 ‘군중’은 한자리에 모인 무리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개성을 상실하고 동일한 방향으로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된 ‘심리적 군중’을 의미한다.
• 집단정신의 형성: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의 지능이나 직업과는 무관하게, 군중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집단 심리가 형성된다. 이 상태에서는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처럼 행동하며, 마치 화학 결합처럼 개별 요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성이 나타난다.
• 지능의 저하와 무의식의 지배: 군중 속에서 개인의 지적 능력과 개성은 사라지고, 모든 민족이 공유하는 무의식적 성격만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군중은 높은 지능이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며, 뛰어난 개인들이 모였더라도 그들이 내리는 결정은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수준으로 수렴하기 쉽다.
• 군중 특성 형성의 3대 원인:
1. 무적의 감정과 무책임성: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만으로 본능을 억제하지 않으며, 익명성 덕분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2. 전염: 감정과 행동이 군중 사이에 급격히 전파되어,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게 만든다.
3. 피암시성(최면 상태): 군중 속의 개인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뇌 활동이 마비되고 척수(무의식)의 노예가 되어, 암시받은 대로 즉시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 문명의 계단 하락: 군중 속의 개인은 고립되었을 때는 교양인일지라도, 집단 속에서는 야만인, 즉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충동적이고 난폭한 존재가 된다.
제2장: 군중의 감정과 도덕성
군중은 이성보다 본능과 자극에 휘둘리는 원시적 특성을 보인다.
• 충동성, 변덕, 과민성: 군중은 외부 자극의 노예이며, 자극의 종류에 따라 잔혹해지거나 영웅적으로 변하는 등 극단적 변덕을 부린다. 그들에게는 ‘불가능’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며, 수적 힘을 믿고 살인이나 약탈의 암시에도 쉽게 굴복한다.
• 피암시성과 맹신: 비판 정신을 상실한 군중은 어떤 기괴한 이야기에도 쉽게 믿음을 부여하며, 집단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소스에서는 표류하는 나뭇가지를 보고 조난자라고 확신한 함선 대원들의 사례를 통해, 배운 자든 못 배운 자든 군중이 되면 관찰 능력을 상실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수천 명의 일치된 증언이라 할지라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 감정의 단순함과 과장: 군중의 감정은 미묘한 차이를 가려내지 못하며, 작은 의혹도 순식간에 확신과 증오로 바뀐다. 군중을 설득하려는 웅변가는 논리적 증명보다 격정적 단언과 반복을 사용해야 한다.
• 편협성, 독선, 보수성: 군중은 자신들의 신념을 절대적 진리로 믿으며,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강력한 권위 앞에 비굴하게 굴복하며, 혁명적으로 보이는 국면에서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보수적 본능을 가졌다.
• 도덕성: 군중은 파괴적 본능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영예, 명예, 애국심 등에 호소하면 개인보다 훨씬 더 큰 자기희생과 헌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3장: 군중의 사상, 추론, 상상력
• 사상: 군중에게 주입되는 사상은 절대적이고 이미지 형태여야 한다. 군중 사이에서는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모순된 사상들이 나란히 존재할 수 있으며, 비판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위대한 사상이라도 군중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수준을 낮추고 이해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 추론: 군중의 추론은 수준이 낮으며, 표면적 유사성이나 연속성에 근거한 열등한 유추를 사용한다. 그들은 논리적 증명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직 가슴에 꽂히는 몇 마디 말과 이미지에 설득된다.
• 상상력: 군중은 이미지로 생각하며, 경이롭고 전설적인 것에 강하게 반응한다. 국가 권력과 정복자의 힘은 이러한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서 나온다. 군중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제시되는 방식이며, 응축된 강렬한 이미지여야 한다.
제4장: 군중의 모든 확신이 갖는 종교 형태
군중의 신념은 그것이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종교적 감정의 형태를 띤다.
• 종교적 감정의 특징: 우월한 존재에 대한 숭배, 마법적 힘에 대한 두려움,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 반대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편협성 등이 그 특징이다.
• 신념의 절대성: 군중에게는 무엇보다도 ‘신’이 필요하며, 무신론조차 군중이 받아들이면 곧 광적 종교로 변질될 수 있다. 나폴레옹이나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들이 군중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이러한 종교적 환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 역사적 대격변의 주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나 공포정치와 같은 사건은 지배자의 권력보다 군중의 영혼, 즉 종교적 감정이 추동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군중 속의 개인은 ‘최면에 걸린 자동인형’과 같다. 개별적인 세포는 살아있으나 전체 유기체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며, 논리적 언어(이성)보다 번쩍이는 빛(강렬한 이미지와 암시)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그 결과 때로는 파괴적 악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성자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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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군중의 의견과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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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군중의 의견과 신념에 영향을 주는 간접 요인
간접 요인은 군중의 정신에 특정 확신이 스며들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하거나, 반대로 특정 사상을 차단하는 예비적 역할을 한다.
1. 민족(Race): 모든 요인 중 가장 강력하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암시를 대변한다. 문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신념, 제도, 예술)는 민족혼의 외적 표현에 불과하며, 민족적 기질과 상반되는 외부 암시는 일시적 영향에 그친다.
2. 전통: 과거의 사상과 욕구가 결합한 유기체로, 민족혼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문명은 전통의 관계망을 구축하면서 시작되고, 그 전통이 유익함을 잃었을 때 서서히 폐기하며 진보한다. 군중은 전통 사상을 가장 끈질기게 고수하는 보수적 집단이며, 혁명을 일으켜도 제도의 명칭만 바꿀 뿐 본질적으로는 전통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3. 시간: 신념을 생성하고 키우며, 동시에 파괴하는 유일한 창조자이자 지배자다. 어떤 사상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시간이 그 사상의 개화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며, 오늘날 군중의 위협적 열망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4. 정치 및 사회제도: 제도는 사상과 관습의 산물일 뿐, 그것이 국민을 변화시키거나 사회의 결함을 개선하지는 못한다. 제도는 민족의 산물이며, 명칭은 공허한 이름표에 불과하다. 따라서 완벽한 제도를 만들려는 노력은 헛수고이며, 민족의 특성에 맞지 않는 제도는 임시방편의 눈속임일 뿐이다.
5. 학습과 교육: 르 봉은 당시의 암기 위주 교육(라틴식 교육)이 지능을 높이지 못하고 오히려 다수의 학습자를 사회의 적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책에 담긴 지식보다 판단력, 인격, 진취성이 삶의 성패를 가르며, 실무 경험 없는 주입식 교육은 불평분자와 무정부주의자를 양성할 위험이 크다.
제2장: 군중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직접 요인
직접 요인은 간접 요인이 마련한 토대 위에서 군중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행동(폭동, 파업 등)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1. 이미지, 단어, 경구: 군중의 상상력은 이미지에 지배받으며, 단어와 경구는 주문처럼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민주주의’, ‘자유’와 같이 모호하지만 강력한 단어는 실제 의미와 무관하게 군중에게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정치인은 군중이 반감을 품은 명칭을 중립적이거나 대중적 단어로 교체하여 대중을 유도한다.
2. 환상: 문명의 여명기부터 군중은 진실보다 환상을 갈망해 왔다. 환상이 없다면 인간은 야만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며, 오늘날 사회주의가 강력한 이유도 군중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살아 있는 유일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3. 경험: 해로운 환상을 걷어내고 진실을 심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다만 경험이 효과를 보려면 대대로 자주 반복되어야 하며, 프랑스 대혁명이나 보불전쟁처럼 참혹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군중은 깨달음을 얻는다.
4. 이성: 군중은 논리적 증명에 거의 영향받지 않으며, 조잡한 연상 작용을 통한 암시적 이미지에 설득된다. 따라서 군중을 움직이려면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적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
제3장: 군중의 지도자와 그들의 설득 수단
1. 지도자: 군중은 본능적으로 우두머리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지도자는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가이며, 강력한 신념에 사로잡혀 군중에게 믿음을 심어준다. 이들은 일시적 의지를 가진 부류(난폭하고 대담함)와 지속적 의지를 가진 부류(종교 창시자 등)로 나뉜다.
2. 행동 방법:
• 확언(Affirmation): 증거 없이 간결하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권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반복(Repetition): 확언이 무의식 깊은 곳에 뿌리내려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 전염(Contagion): 사상과 감정이 군중 사이에서 병원균처럼 퍼져 나가는 현상으로, 모방의 근원이 된다.
3. 위신(Prestige):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고 존경심과 두려움을 자극하는 지배력이다. 이름이나 재산에서 오는 ‘획득한 위신’과 개인의 매력에서 오는 ‘타고난 위신’이 있다. 위신은 성공에 의해 유지되며, 실패하거나 이의가 제기되는 순간 빠르게 사라진다.
제4장: 군중의 신념과 의견의 가변 한계
1. 불변의 신념: 기독교 사상이나 민주주의처럼 수 세기 동안 문명의 골격을 이룬 원대한 신념이다. 이는 뿌리 뽑기가 어렵고 폭력 혁명을 통해서만 바뀌기 쉬우며,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그 문명도 몰락하기 시작한다.
2. 가변적 의견: 불변의 신념 위에서 명멸하는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생각들(예: 낭만주의, 유행)이다. 오늘날 일반적 신념이 붕괴하고 언론이 확산되면서 여론은 과거보다 훨씬 변덕스러워졌으며, 정부나 언론은 이제 여론을 주도하기보다 뒤쫓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이러한 무관심과 의견의 세분화는 역설적으로 특정 단일 의견의 독재를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군중의 신념 체계는 깊은 호수와 같다. 호수 깊은 곳의 물(불변의 신념)은 움직임이 크지 않아 호수의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수면 위에서는 바람(직접 요인과 지도자)에 따라 끊임없이 파도(가변적 의견)가 일렁인다. 지도자는 이 바람을 이용해 파도의 방향을 바꾸는 항해사와 같으며, 위신이라는 돛을 통해 군중이라는 배를 자신이 원하는 항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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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군중의 분류와 다양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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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군중의 분류
르 봉은 군중을 크게 이질적 군중과 동질적 군중으로 분류하며, 각각의 특성이 민족정신에 의해 어떻게 조절되는지 설명한다.
1. 이질적 군중(Heterogeneous Crowds): 지능이나 직업이 다른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다.
• 익명 군중: 거리의 군중처럼 책임감이 거의 없는 무리다.
• 비익명 군중: 배심원단이나 의회처럼 이름이 공개되어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집단이다.
• 민족의 영향: 이질적 군중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에 지배받는다. 민족정신이 강력할수록 군중의 야만적 특성은 억제되며, 나라마다 사회주의나 민주주의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 동질적 군중(Homogeneous Crowds): 비슷한 요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 파벌(Sects): 정치적·종교적 신념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된 조직의 첫 단계다.
• 폐쇄집단(Castes): 군대, 성직자, 노동자처럼 직업이 동일하여 교육 수준과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가장 높은 수준의 조직이다.
• 사회계급(Classes): 이해관계나 생활 습관이 비슷한 부르주아, 농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제2장: 범죄자 군중
심리학적 관점에서 군중의 범죄는 일반 범죄와 결이 다르다.
• 심리적 상태: 군중은 암시에 따라 조종되는 의식 없는 자동인형과 같아서, 법적으로는 범죄자일지라도 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한다고 확신한다.
• 사례 분석: 바스티유 감옥 습격 당시 지휘관을 살해한 요리사는 대중의 환호 속에서 자신이 ‘애국적 행동’을 했다고 믿었다. 1792년 ‘9월 학살’에 가담한 이들도 평범한 상인이나 사무원이었으나, 암시에 걸려 적군을 처단한다는 확신 속에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
• 특징: 이들은 잔혹한 본능을 발산하면서도, 희생자의 금품을 혁명위원회에 정직하게 제출하는 등 묘한 도덕성을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제3장: 법정의 배심원단
배심원단은 비익명 이질적 군중의 전형적 사례로, 전문가(판사)의 지배를 받는 특성이 있다.
• 지적 수준의 무의미성: 통계에 따르면 식자층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나 노동자로 구성된 배심원단이나 평결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군중이 되는 순간 개인의 지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설득의 요소: 배심원은 이성적 논증보다 감정과 위신에 휘둘린다. 유능한 변호사는 논리보다 배심원의 감정을 자극하고, 영향력 있는 몇몇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집중한다.
• 범죄에 대한 태도: 사회에 위협이 되는 범죄에는 준엄하지만, 치정 사건이나 버림받은 여성의 복수 등에는 본능적으로 관대해진다. 르 봉은 법조문의 경직성을 완화해주는 이 제도가 판사라는 폐쇄집단의 독재보다 안전하다고 평가한다.
제4장: 유권자 군중
유권자 군중은 공직자를 선택하는 특정 역할만 수행하는 이질적 군중이다.
• 후보자의 조건: 핵심은 위신(Prestige)이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재능보다 그가 가진 명성이나 재력에 굴복하며,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과도한 아첨과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쏟아내야 한다.
• 단어와 경구의 마법: ‘추악한 자본’, ‘존경스러운 노동자’와 같은 강렬한 표현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 도구가 된다.
• 위원회의 독재: 실제 표심은 선거위원회와 같은 소수 지도자들에 의해 좌우되며, 이는 폭압적 형태의 권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 보통선거의 운명: 르 봉은 보통선거가 지적으로 열등한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하면서도, 그것이 이미 시대의 신념이 되었으므로 폐지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선거 결과는 결국 민족의 무의식적 열망을 반영하게 되어 있다.
제5장: 의회 군중
의회는 비익명 이질적 군중의 특성을 공유하며, 정당 지도자의 암시에 크게 의존한다.
• 의견의 단순화: 복잡한 사회문제를 추상적이고 간명한 원칙으로 해결하려 하며, 이로 인해 의회는 극단적 대립의 장이 된다.
• 지도자의 영향력: 의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는 고집을 피우지만, 일반적 문제에서는 위신을 가진 지도자의 암시를 기계적으로 따른다. 지도자는 논리가 아니라 단호한 확언과 인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의회를 지배한다.
• 자동인형 상태: 극도로 흥분한 의회는 의원 개개인의 자아를 상실하게 하며, 프랑스 혁명기의 의원들이 다음 날 자신이 단두대에 갈 것을 알면서도 동료의 사형에 찬성한 것과 같은 자기 파괴적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 의회 제도의 위험:
1. 재정 낭비: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불필요한 지역 예산을 승인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이끈다.
2. 자유의 제한: 사소한 영역까지 규제하는 무수한 법안을 통과시켜 결국 시민을 수동적 꼭두각시이자 공무원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군중의 분류와 그 종류를 이해하는 것은 강물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이질적 개인들이 모인 강물(군중)은 지형(민족정신)에 따라 경로가 정해지며, 댐(지도자의 위신)이나 좁은 수로(위원회/의회)를 지날 때 급격히 빨라지거나 파괴적 소용돌이(범죄적 군중)를 일으킨다. 결국 이 모든 물줄기는 바다(문명의 종말)를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개별 물방울(개인)의 의지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