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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r 07. 2022

자유의 역설

1984 서평

 거세된 인간성은 미래를 잉태하지 못한다. 현재에 머무르기도 벅차서 날이 갈수록 과거로 퇴보할 것이 뻔하다. 조지 오웰의 '1984'(이하 본작)는 독재 정권이 권력을 잡게 되고 전체주의가 발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소설이다. 본작에서 개인들은 검열당하고 통제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조지 오웰은 자본주의,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을 보고 만약 공산주의 진영이 승리하여 전 세계적으로 전체주의가 주가 됐을 때 일어날 일을 본작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냉전 초기인 1948년에 발표된 소설이라 고려했을 때 조지 오웰의 선구안을 놀라운 수준이다. 특정 국가를 꼽진 않겠지만, 보통 우리가 본작을 읽으면 기시감이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본작을 단순히 미래 예측을 잘한 소설 정도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본작을 읽고 '공산주의가 실패해서 다행이다', '우리가 아니라 감사하다' 정도의 감상에 그쳤다면, 안타깝다. 앞서 말한 선구안이 놀랍다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두고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본작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 세 초강대국이 각각 통치하고 있으며 주 무대는 오세아니아다. 끝없는 전쟁 속 세계는 성장하지도 않고 후퇴하지도 않으며 궁핍하고 곤궁에 처한 현실을 유지하고만 있다. 텔레스크린이라는 송수신이 가능한 기계와 숲속에도 숨겨져 있는 마이크로 어디에서든 24시간 내내 사람들을 감시한다. 가장 무서운 건 사상경찰이라 할 수 있는데, 사상경찰은 군중 속에 숨어 조그마한 표정 변화, 말투 등을 빌미로 반역의 씨앗이 되는 인물을 잡아내는 자들이다. 그리고 사상경찰에 의해 적발되어 처형되면 보통 그 사람은 존재했던 기록 자체가 완전히 말소되어 세상에 없던 사람이 되고, 본작에서는 이를 '증발됐'다고 표현한다. 또, 오세아니아의 국민은 세 개의 계급으로 나뉜다. 총 3억 명 인구 중 2%에 해당하는 핵심당원, 85%에 해당하는 프롤 계급, 그 나머지는 일반 당원으로 주인공은 여기에 속해있다.


 본작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라더 휘하 영국 사회주의(영사)를 내세운 집권당에 의해 철저히 파멸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개인의 몰락을 그린 작품은 많이 있지만, 외부적 요인이자 악에 고문당하며 개조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3부에 고문에 대한 집중적인 표현이 나오는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잔혹하다.

 '윈스턴 스미스'는 당에 반기를 든다. 이유는 종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윈스턴 스미스'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윈스턴 스미스'는 집권당이 정권을 잡은 혁명 이전을 기억한다. 그래서 계속 현재와 과거를 비교한다. 현재 정부는 혁명 이전보다 삶이 나아졌다고 선전하지만, '윈스턴 스미스'는 그렇게 느끼지 못해 괴리감이 컸다. 하나하나 파헤칠수록 괴리감은 의혹이 되고 몇몇 사건들 겪으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조작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의혹이 시작된 건 7년 전이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체스트넛트리 카페에 앉아있는 세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그들은 범죄자였으나 혁명 초기 높은 위치에 있던 자들이었다. '윈스턴 스미스'가 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공개 처형당한다. 그러다 일하고 있는 '윈스턴 스미스'에게 사진 한 장이 잘못 전달됐다. 그 사진은 세 사람의 자백이 거짓이라는 증거였다. 적국에 있다고 진술했던 날짜에 그들은 국내에서 개최한 당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것이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검은 눈동자가 윈스턴의 눈을 노려보았다.


 감시와 통제가 만연한 사회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대놓고 반항심을 표출할 수 없었다. 목도한 진실을 두고도 실천에 옮기기까지 7년이 걸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됐으리라. 첫 번째 반항은 골동품 상점에서 오래된 노트를 사는 행동이었다. 현재는 생산되지 않은 과거의 유물이기도 했지만 '윈스턴 스미스'에게 노트는 기록할 수 있는 소중한 물품인 것이 더 의미 있었다. 기록이란 것은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다. 과거가 지켜지지 않은 사회는 모든 것이 휘청인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윈스턴 스미스'가 일하는 부서는 과거 기록을 말소하고 수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만일 빅 브라더가 1년 전 예측한 경제 성장 수치와 금일 발표된 실제 성장 수치가 다르다면, 1년 전 예측 수치를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결국 예측을 맞게 바꿔버렸다. 빅 브라더는 결코 틀리는 법이 없었다.

 '윈스턴 스미스'는 기억을 찾아 헤맸다. 프롤 계급이 사는 지역에 들어가 과거에 살았던 노인을 찾아갔다. 그때는 어땠는지, 지금보다 정말 가난했는지 등을 묻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러다 노트를 샀던 골동품 가게를 찾는다. 60대로 보이는 사장 채링턴에게 옛노래와 옛이야기를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 난 당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당신을 보자마자 그들에게 맞서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줄리아'는 당돌한 여자였다. 당을 속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반항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윈스턴 스미스'를 보고 자신과 같을 것이라 확신하고 접근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둘은 당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아주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줄리아'는 나이가 20대였기에 혁명 이전 기억이 전혀 없었다. 당은 싫지만 전복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고, 태어나자마자 통제된 사회 속에서 자라서 어쩔 수 없이 길들어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심각한 것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인식이었다. 모두 거짓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중요하지도 않다 생각했다. 이것은 '줄리아'가 당을 아무리 미워해도 이미 당의 손아귀에 있다는 의미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식은 이중사고의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이중사고는 한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이념을 갖고 이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는 힘을 말한다.


 이중사고를 통해 당은 과거를 지배했다. 과거는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사라졌다. 이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실 또한 사라지면 진짜로 과거가 사라져버린다.


  평화부는 전쟁을 관장하고, 진실부는 거짓말을 하고, 사랑부는 고문을 자행하고, 풍요부는 궁핍을 만들어내고 있다. (...) 이는 교묘한 이중사고의 행위다.


 '윈스턴 스미스'와 '줄리아'는 둘의 종말을 알고도 밀회를 즐기다 결국 사상경찰에 의해 적발된다. 사랑부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받으며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마음이 꺾여버린다. 핵심당원은 쉽게 둘을 총살하지 않았다. '윈스턴 스미스'는 끌려갈 때만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 테니 반항하지 않고 듣고자 하는 말을 거짓으로 다 해줄 요량이었다. 그러나 당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지난날 전제군주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전체주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어. 우리 명령은 '너희는 원래 이래'라는 거야. (...)"


 종국에 '윈스턴 스미스'은 7년 전 봤던 세 명의 범죄자처럼 체스트넛트리 카페에 앉아 허망한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줄리아'를 배신하고, 훗날 다시 만난 '줄리아'를 통해 서로를 배신했다는 것까지 알자, '윈스턴 스미스'는 깨달았다. 그들은 정말 모든 범죄자가 진심으로 사상범죄 자체를 뉘우치고 진실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만든 후 처형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은 기어코 정복할 수 없을 거라 예상한 사람의 마음마저 통제하고 있었다. 그제야 '윈스턴 스미스'의 머리에는 총알이 박히는 듯했다.


 윈스턴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당의 통제 수단 중 주요하게 언급된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들은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몰두했는데, 이는 사고를 제한하는 우민화를 위한 발판이었다.


  "자네는 신어의 목적이 사고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겠나? (...) 말 그대로 사상범죄가 '불가능'해지게 할 거야. (...)"


 훔볼트에 의하면 언어는 정신력 또는 민족정신과 대등한 어떠한 것으로 정의된다. 또, 언어는 민족정신의 외족 표출이며, 민족의 언어는 민족의 정신이라 확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언어를 의도적으로 수정하고 제한하는 것은 민족성을 건드는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피어-워프의 가설에 의하면 언어의 강제력이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며 사람이 이것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언어결정론으로 이어진다. 쉽게 말하면 언어란 것은 사고의 기원이며 재료다.

 신어를 통해 단어를 삭제하고 단순화하는 작업은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는 것이며 사상범죄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통제하는 방법이었다.


 본작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2022년(혹은 훗날 본작을 읽은 당시)은 어떤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2022년 한국은 개인은 자유롭고, 국가 기관이 모든 개인을 사찰하지는 않으며, 언어는 통제되지 않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몇 가지 사건은 있다.


 국가적 재난인 팬데믹 사태로 인해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자영업자는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기에 국가에 의한 조치를 따를 뿐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월패드 해킹 관련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월패드란 집 내부에 설치된 기기로 집안 기기를 통제하고 외부와 소통도 할 수 있는 장치이다. 월패드에 집안을 향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이 해킹당해 영상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요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태블릿 PC와 노트북 등 웬만한 장치에는 카메라와 음성 녹음 장치가 달려있고 그에 따른 해킹 범죄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감히 통제받고 있다고, 지금 2022년 대한민국이 본작의 오세아니아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은 국민의 눈으로 직접 판단해야 한다. 앞서 말한 사건과 사실을 나열한 것은 자칫 잘못하면 더 심각한 디스토피아로 직결될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다.


 3월 9일 대선이 이틀 남았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는 불가능하겠지만 모쪼록 최선의 결과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별글

작가 : 조지 오웰

옮긴이 : 박준형


-참고 자료


이재원, 언어는 ‘정말’ 도구 organum인가 - 플라톤/뷜러, 하만, 훔볼트, 소쉬르, 벤야민을 중심으로, 2019.

사피어 워프 가설,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69214&cid=50852&categoryId=5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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