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선소 뜀박질

목포여행기 2

by 새까만 오른발

내가 묵었던 호텔현대 바이 라한 목포점은 조선소 옆 높은 산자락에 위치했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삼호 조선소 정문 로터리를 지나 약 200m 정도 되는 높은 경사 직진로를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여길 뛰어 올라온다면 내 종아리가 터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됐다. 여행지에서 조깅루트를 짜면서 이 오르막길을 의식했다. 내려갈 때는 천천히 잔걸음으로 오도도 뛰어내려 가고 올라올 때는 고개를 땅에 박고 스프린트를 해야겠다 싶었다.


이윽고 아침해가 밝을 무렵 눈을 뜨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커튼을 열어봤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바다 위에 가라앉았다. 이거 뛰어도 되나 싶었다. 생체 공기 청정기를 자원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그래도 태어나 처음 해보는 여행지 조깅인데 간단하게라도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밖을 나섰다. 바라클라바부터 운동화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맞췄다. 호텔 로비에서부터 나 혼자 느끼는 시선을 떨쳐내려 후다닥 뛰어 나갔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마주치는 직장인들의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팔자 좋은 관광객이라 생각하겠거니 하며 대기업 직원을 부러워하는 내 눈빛을 애써 감췄다. 산업 단지 도로가에서부터 느껴지는 기름 냄새와 매연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건조한 회색빛 일상 속에서 나는 그 일상을 느끼고 싶었던가보다. 나에게는 여행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상인 간극에서 느껴지는 상이함이 있다. 목포 바닷가만의 냄새, 바람, 도로 위치, 건조 중인 배, 오래된 인도, 불법 주차 등등 뛰면서 느껴지는 걸음 사이사이에서 느낀 모든 것을 기억하려 한다.


목포에 자리 잡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10여 년 전 조선업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으로 붕괴되었던 시기 이후 목포를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다녔을 거리에 있는 알짜배기 상가들은 대부분 텅 빈 유리창에 '임대' 현수막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런 적막함이 시간이 지나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남을 넘어가는 다리까지 방파제를 따라 뛰었다. 평소에는 강둑이나 따라 뛰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뛰니 마음이 정말 트였다. 대기질과 무관하게 기분은 정말 상쾌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목포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러닝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2.5km 반환지점을 지나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오르막길은 도전적으로 뛰었다. 처음에는 내 모든 힘을 다 해 전력질주로 오르려 했으나 10초도 못 가서 헥헥 대며 걷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뛰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거의 앞꿈치로 허리를 접은 채 올라갔다. 올라가고 나서 반가운 평지를 딛고 보니 또 호흡이 천천히 돌아왔다. 그래서 호텔 주변 산책로를 두 바퀴 더 뛰었다.


여행지에서 뛰어봤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하나 더 깨달았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운동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에게 여행은 데이트와 운전뿐이었다. 그저 목적지에 도착해 그 주변을 식도락에 그쳤다. 하지만 이에 더해 조깅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줬다. 나는 잠시 머물다 가지만 이곳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나가면서나마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이곳의 공기와 바람을 직접적으로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더 자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여행지에서의 조깅은 재미있었다.


낯선 길을 쉬지 않고 뛰면서 새로운 시야를 눈에 담고 호흡으로 담는 경험은 내 일상에 순응한 머리와 감각을 새롭게 일깨워줬다. 여행을 더 다니고 싶다. 머지않은 시기에 외국으로도 가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지에서 뛰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