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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May 24. 2019

캐나다의 이웃들 <48>

두 trainer에 헷갈렸던 어두운 기억

서양사람들의 성은 무지하게 많고 어디선가 현재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쏟아진다는 느낌이 확 든다. 이민자들이 많으니 읽기도 어려운 것들도 있고 이상하게 발음하는 것들도 천지다. 개중에 우리의 이 씨나 박 씨처럼 흔한 것들도 있다.  맥도널드나 필립 스미스 정도는 좀 흔한 편이고 그 외는 개성이 강해 보이는 성씨들이다. 그래서 같은 성을 쓰는 손님의 경우 일단은 가족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족 중 한 명이 우리 손님이면 아들 며느리 딸 등도 손님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도 계산은 칼같이 한다. 온 김에 너희 아들 꺼 찾아가라면 노라고 말하는 게 다수다.


트레이너도 흔해 보여도 우리 가게  유일한 손님으로  10여 년을 보냈고 우린 다른 트레이너는 생각을 못했다. 또 부부는 오랜 단골로 개인적으로 좀 알고 그들의 옷 구성이나 입는 타입 등도 얼추 기억하고 있다. 부인은 앞이 훅 파인 드레스나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를 잘 입고 색상은 좀 밝은 편을 선호하는 편이다. 남편은 버스회사 사장인데 정장은 절대 안 입고 짙은 바지에 브라운톤의 재킷, 흰색 셔츠를 즐겨 입는다. 이런 옷이 한벌이 아니고 여러 벌이다. 바꿔 입어도 이런 식이다.


이런 훤히 안다고 생각했었던 손님에게 실수가 나왔고 아직까지 완전한 메이크업이 안되고 있다.  일 년 전 꼭 이맘때인 것 같다. 트레이너 남편이 지나가는 길에 내 옷 있나 하고 물었다. 그래 한번 보자면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니 한 무더기가 나왔다. 난 아무 생각 없었고 그도 워낙 옷이 많아서 제 옷이 무엇인지 일일이 기억을 못 할 정도였다. 그는 찾아갔고 일주일 뒤  리턴해왔다. 자기 와이프가 우리 옷이 아니라며 확인했다는 것. 자기 옷을 부인이 체크할 정도니 옷이 많은 건지 아니면 무신경한 건지...


문제는 그 뒤 2,3일 뒤 발생했다. 젊은 아가씨가 트레이너 옷을 찾으러 온 것이다. 전혀 모르는, 처음 오는 손님 같았다. 혹시 버스회사 하는 트레이너 아느냐고 물어보니 전혀 모른다는 답. 우리 동네에서 가족이 아니면서 같은 성씨를  쓰는 케이스가   드물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하필이면 와이프가 옷을 받아서 더더욱 안면이 없었다.

멕시코 해변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찍은 젊은 트레이너 부부. 그들은 저 셔츠를 찾았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둘 다 인물이 출중하다.


젊은 트레이너가 찾아간 뒤 곧바로 전화가 왔다. 결혼식 때 입었던 셔츠가 없다는 것. 그러면서 사진을 보냈다. 이사진을 늙은 트레이너에게 보여주며 찾아보고 돌려 달라고 했다. 며칠 뒤 그의 부인이 가져온 파란색 셔츠는 비슷한 것 같은데 약간 차이가 났다. 젊은 트레이너의 셔츠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파란색이면서 소매와 옷깃의 마진에 포인트를 준 것인데 돌아온 것은 그게 없었다. 일단 받아서 젊은 트레이너에게 준 뒤 이상이 있으면 다시 말하라고 당부했다. 분명히 뭔가 컴플레인을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들은 넘어갔다. 그래도 양심이 찔려서 늙은 트레이너에게 한 번 더 체크해보라고 부탁했다. 아마 3개 한 묶음이 송두리채 사라졌는데 그중 하나만 돌려줬고 다른 두 개는 그의 집 장롱에 있는 게 분명한데 찾을 수가 없다는 대답. 비슷한 색상의 옷이 무더기로 있고 더더욱 젊은 트레이너의 옷도 전부 파란색이니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젊은 트레이너 부부가 별말 없이 넘어간 건 비슷한 옷이 많이 있거나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기가 미안한 게 아녔을까. 이런 생각까지 미쳤으면 알아서 해결해줘야 하는데 주인인 나도 너무 안일했었던 것 같다.  세탁소 하면서 가장 크게 비양심적인 행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래 기억될 사건이다. 그외 자잘한, 눈감아도 될 정도의 일은 은근설쩍넘어가는것도 있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고 자위하면 그냥 묻혀버리는데 이 일은 그런 것과 좀 성질이 다른 것 같아서 맘이 편치 못할 때가 많다. 요즘도 젊은 트레이너의 아내가 간혹 오는데 만일 지금이라도 이상을 발견하고 찾는다면 내가 직접 늙은 트레이너의 집을 방문해서 뒤져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가게의 고유의 텍이 붙어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녀를 볼때마다 말을해야되나 괜히 말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는 않을까하는 이중적생각이 머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이건은 이렇게 묻힌다 하더라도 이일을 계기로 절대 세탁소 주인으로서 비양심적인 일을 숨기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장사는 신용이 생명인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요령만 늘고 약삭빨라지는 것 같아서 어떤 때는 서글퍼지기도 한다. 손님들이 어떻게 나를 속이든 주인은 절대 정직을 추구해야 된다는  선배들의 충고를 꼽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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