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소소한 일상 <57>
세탁소를 한 곳에서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슴 아픈 거는 이별. 며칠 전까지 멀쩡하다가 세상을 등지거나 몇 년을 고생하면서도 가는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도 더러 본다. 이과정을 세탁물에 고스란히 남기거나 유족들이 내게 알려준다. 이게 우리와 좀 다른 점인데 물어보면 마지막을 솔직히 말하고 묻지 않아도 나와의 생전의 관계를 고려해서 마지막 장면을 비교적 상세하게 들려주는 편이다. 이럴 때 좀 난감한 게 화자의 말에 몰입하고 있다는 추임새를 넣어줘야 하는데 우리말이 아닌 영어라서 좀 어색하게 느낄 때가 많다. 그래도 말하는 사람의 성의를 봐서 최대한 공손하면서 아픔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다가 간다.
이틀 전 간혹 오는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불세트를 가져왔다. 이불에 베개피 두장을 합해 보통 세트라 부른다. 눈여겨 볼 대목은 베개피가 두 개란 점. 사자의 부인은 살아있다는 건가. 아니면 혼자 베개 두 개를 사용할 수도 있고. 보통 침대에는 침대포 와이불, 베개 두 개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베개피가 두 개라고 해서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정황 증거는 될 수는 없다. 누군가 있었다면 힘든 순간을 겪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흔적이 남아있어서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보았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카운터에 아크릴판으로 방벽을 쳐 놓고 가급적 필요한 말만 하는 형편이라서 물어보지 못했고 그녀도 말하지 않았다..
한 베개피와 이불 한쪽 가장자리에 선명하게 남긴 빨간 자국. 피보다 연하고 핑크색보다는 조금 진한 색. 피자 소스에 가까운 토사물이 아닐까. 아마 망자는 건강이 별로 안 좋다는 건 평소에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피자를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자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생각나서 먹을 수 도있었을것이다. 그는 맛있게 그걸 먹고 자기 방에서 자다가 운명을 앞두고 흔적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간 게 아닐까. 이불에 묻은 흔적의 선도를 감안할 때 일주일 이내 로보였다.
이 유족들은 비교적 빨리 가져온 케이스다. 스폿은 빠르면 빠를수록 잘 지워진다. 어떤 이는 망자가 쓰던 방을 일 년이고 이년이고 그대로 둔 채 회상하다가 가져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때도 안정을 찾아서 몰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도 재사용의 용도보다는 보관 목적이기 때문에 때가 그대로 있어도 별 불만을 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망자가 남긴 옷은 대부분 후손들이 입기 위해 세탁을 하기 때문에 신경 써서 세탁을 해야 한다. 특히 망자의 결혼식 때 입은 웨딩 가운은 대대손손 입는 경우도 봤다. 시대에 한참 뒤 떨어진 패션인데도 불구하고 세탁한 뒤 그냥 입는다. 의미를 부여하면 별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이 이불세탁은 먼저 피자소스가 잔뜩 묻은 베개피 하나와 이불 모서리를 옥시에 24시간 담가 두면서 서서히 제거했다. 그 뒤 물세탁을 했다. 세탁기에 넣기 전에 코로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는 이유는 세탁 뒤에도 이 냄새가 남아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냄새를 기억했다가 세탁 후 비교해 보기 위해서다. 보통 망자의 유품에는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난다. 이 이불은 보통의 이불과 같이 약간의 땀냄새 정도. 생전에 깔끔했고 주변 사람들도 망자를 잘 챙겼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이렇게 망자의 유품을 세탁하기 전에 추측하는 건 우리 가게를 이용해주신 손님에 대한 작은 배려이면서 생전의 망자를 떠올리고 짧은 순간이지만 세탁소 주인과 손님으로서 가졌던 인연을 반추해 보는 계기 정도. 그리고 명복을 빌기 위한 생각 모음의 기능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