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화장실에걸려있는 한글 안내문. 한인 이민자들이 캐나다사회에 뿌리를 내린걸까. 아래 고리를 잡아당기면 작은 선반이 나오고 그곳에 검사샘플은 놓아두면된다.
대부분 이민자들은 모국이 현지인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알긴 할까. 더 나아가 국격은 어떨까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인데 그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게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짧은 지식으로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고, 첫 느낌으로 생각나는 건 삼성 핸드폰과 현대자동차 등의 긍정적인 것과 분단사회의 고통 그리고 북한 김정은의 독재 등 부정적인 시선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k pop을 꼽았고 실제 많이 알고 있었다. 이 외에 한인 이민자 중에 정치인, 법조인, 의사 등 사회 기둥을 많이 배출했다던지 본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치가 현지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등도 약간 감안해볼 수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에 가깝고 객관적인 잣대로는 역부족. 최근 뜻밖의 장소에서 그 근거가 될만한 모티브를 찾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흐미한 실마리쯤은 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rab화장실에서 발견한 한글 안내문. 랩이란 건강검진센터쯤이랄까. 피, 소변, 대변검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다. 내 개인적으로 일 년에 두 번 정도 검사를 위해 방문하는데 작년 연말에는 우리말이 없었는데 지난 주방문 했을 때는 뚜렷하게 안내문에 적혀있었다.
위 사진에 보다시피 영어로 게시한 뒤 몇몇 나라말이 그 밑에 병기돼있는 걸 볼 수 있다. 맨 위부터 아랍어 중국어 이란어 프랑스어 한국어 인도어순으로 나열돼 있다. 이순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민자수나 경제력 이민역사 등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특이한 점은 일본어가 빠졌고 스페니쉬 베트남 필리핀어도 없다는 것. 일본은 이민역사가 깊은 데다가 이곳 캐나다에 끼친 영향도 만만찮은데 없다는 건 현재 이민자가 줄어들었고 과거 이민자들은 거의 영어나 불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닐까 본다. 그러나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보조금 프로그램에는 일본어가 버젓이 나와있는 걸 봐서는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스페니쉬가 없다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든다. 남미 이민자 들이밀려오는데 홀대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최근 이민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필리핀과 베트남은 명함을 못내 밀고 있는 실정이다. 필리핀은 일부 영어를 한다고 감안하더라도 베트남은 어떤 기준으로 뺏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생뚱맞게 아랍어가 왜 있지? 여기 근 20년 살면서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민자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웬 기준으로 표기를 했을까 궁금하다. 차라리 러시아어를 넣는 게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회사 측에서도 아랍의 주측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란어를 넣었으니 균형 맞춘다는 차원일 수도 있겠다. 이란인은 많다. 집단 거주지역도 있을 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이런 걸 감안해서 우리말은 어떤 기준으로 첨가됐을까. 이민자 수로서는 턱도 안되고 이민자의 질은 주관적이라 제쳐두고 현지에 끼친영향은 더더욱 모자라고 모국의 경제력 내지는 국제사회의 역할 등이 고려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랩 이용자가 타민족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결과일까. 어쨌든 반갑긴 했다.
이런 의미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어와 오직 한국어만 게시된 곳도 있다. 그 한국어는 주로 경고성 메시지.
어느 골프장 입구에 크게 한글로 드레스코드, 골프룰, 리페어 볼 마크 등등을 시시콜콜하게 적어놓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똑같은 내용의 영어 게시판이 자리하고. 그 한글의 의미는 한글을 모국어로 하는 손님들이 게시물의 내용을 잘 지키지 않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어서 습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 골프장 주인은 일본인이다.
이양반은 워낙 까칠해서 18홀 마치고 신발에 묻은 잔디를 털 때도 약간만 경계를 벗어나도 꼭 지적을 한다. 또 한 곳은 레스토랑 테이블. 코로나로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수와 관계가 제한되는데 우린 더불어 함께 한 좌석에 앉는 걸 선호하다 보니 한글 게시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 같은 부정적 의미의 한글도 있지만 긍정적 의미의 한글 영역이 캐나다 사회에서 확장된다는 건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고 세대가 내려 갈수록 신규 이민자가 한결 적응하기 쉬운 사회로 다가오는 신호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