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시 한 편을 필사하면서 우연히 접한 시가 너무 좋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이 시가 와닿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중략)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샌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마지막 문단처럼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신과 함께 있어줄 수 있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아래에 있다.
에세이 과제를 내주면서 선생님이 질문하셨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끝까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나요?" 여기서 핵심 단어는 '끝까지'이다. 가장 비참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내가 나 스스로와 함께 있어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질문이다. 힘들 때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고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다음으로, 결국 친구가 돌아가고 난 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때가 킬링포인트다.
쉽게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를 어떻게 대하더라?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어떻게 하더라?
친구는 내가 힘들 때 찾아가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너른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반면 나는 스스로가 힘든 모습을 볼때면 '방치'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여기서 방치라는 건 한없이 우울한 상태가 아니다. 예를 들면, 건강하지 않은 습관들로 나의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가 부합한 기준에 맞지 않아서 받는 스트레스를 폭식, 과소비 등의 불건강한 모습들로 채우는 것이다. (방치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여러분도 한 가지쯤 있겠죠?)
이쯤 생각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친구라는 존재는 언제든 떠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친구가 힘들 때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먼저 나와 있어줄 수 있을 때 내가 다른 사람과도 온전히 있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나와 있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는 중이다. 나를 마주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일기나 글 또는 어떤 것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끝까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