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늙어갈수록 더 엄격한 시선을 견뎌야 한다.
청춘들은 그 나이만으로 사회의 혜택을 받는다.
청춘들은 실패해도 그다음 기회를 부여받고
이상한 짓을 해도 도전과 방황으로 포장이 된다.
하지만 늙은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허락되지 않는다.
실패하면 기회를 잃고 이상한 짓을 하면 책임감 없는 어른으로 혐오받는다.
"나잇값 좀 해라."는 핀잔과 함께.
이래서 방황도 허락되는 시기가 있다고 하는 건가 보다.
방황을 뒤늦게 할수록 사회의 시선은 엄격해져만 간다.
평생을 엘리트 길을 걸어온 사람이 30대가 되어서야 음악을 하겠다고 나간다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그는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아주 오랜 고민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말이다.
가끔씩 K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사람만큼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나만 봐도 그렇다.
한 때는 미대를 가고 싶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외쳤지만
결국 나는 타협을 했다.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사회의 시선을 견디질 못하고
결국엔 사회가 허락하는 진로를 택했다.
하지만 K는 다르다.
K는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K는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많은 것들을 그만뒀지만
적어도 그가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
K는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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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당일,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했다.
말라비틀어질 것 같던 가녀린 팔다리와
새하얗게 샌 머리카락.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들 알아보겠냐고, 손주들 알아보겠냐고 그렇게 외쳐대도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꼭 처음 보는 사람 보듯 바라보던 그 눈빛이 허망했다.
할머니가 있던 요양실엔 우리 할머니를 포함해
다섯 분 중 세분은 정신이 온전치 않으셨다.
뭐라고 물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고
식사를 하라고 요양보호사가 건네던 밥숟가락을 겨우 무는 정도였다.
추석이라고 엄마가 준비해 온 송편,
건네는 음식을 반사적으로 입에 넣은 할머니.
자기가 그것을 씹을 수 없다고 인지도 못했던 할머니는
고작 그 송편하나로 돌아가실 뻔했다.
송편이 목에 걸려 켁켁 거리시던 할머니.
아무런 말도 없이 무력하게 켁켁 거리시던걸
요양보호사가 발견하고 다급하게 등을 내리쳐서 겨우 뱉어냈다.
그 가녀린 몸으로 강하게 내리치는 손을 견디던 모습,
꽤 고통스러울 텐데도 켁켁 소리 밖에는 못 내던 할머니.
다급한 요양보호사의 외침과 강한 어조와 함께
그 순간을 함께하던 사람들은 싸늘하게, 아주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꼭 그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본 것 같았다.
노화는 사람을 무력하게, 또 추하게 만든다.
늙은 이들은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여기 모여있는 거야.
유능함이 유지됐다면 할머니들이 여기로 추방당할 이유가 없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듯 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돌보기엔 귀찮고
방치하기에는 죄책감이 드니까
결국 여기로 유배를 보낸 거야.
이곳의 할머니들은 젊은이들에게 그야말로 짐짝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요양원을 나오면서
"나는 저렇게까지 연명하듯이 살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하셨다.
책임감, 이건 책임감이다.
이미 당신네들에게 할머니는 짐짝이야.
아무리 선량하듯, 할머니를 생각해 주듯 말해도
우리 부모님에게 할머니는 부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늙은 이들은 사회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늙은 이들은 갈수록, 갈수록 외면받고 고독해진다.
늙어가는 게 무섭다. 외면당할 것이 무섭다.
청춘의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이며
방황이 허락되는 나이에서 최대한 마음껏 방황하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