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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Nov 04. 2022

02   남편의 실직

 남편이 실직했다.


 남편은 당당하게 말하고 회사를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실업급여도 안 받겠다고 했다고, 이건 해고가 아니라 자발적 퇴사라 누차 강조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누가 봐도 실직이었다. 40대 가장의 실직.


 올 전반에 정부의 통계청의 고용동향조사 발표에 따르면, 올 한해의 고용 동향의 가장 큰 특징은 40대의 실직율이 가장 높은 것이라고 했다. 40대란, 아래로는 자녀를 부양해야 하며 자녀의 실질적 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아지는 연령대이며, 위로는 부양해야 할 부모들이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원을 전전해야 해서 요양 비용을 대는 연령대라고 했다. 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40대의 실직은 결국 가정 경제의 붕괴, 가족의 해산으로 이어진다고 아나운서는 높은 어조로 강변했다. 그 뉴스를 들려주자 남편은 그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건 능력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자신은 바로 한달 안에 취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자기같은 경력이라면 어디서든 서로 데려가려 할 거라고. 그렇게 자만했다.


 어디 아픈 현실이 나만 비껴 가는 일이 있는가. 소나기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 내 머리 위에만 해 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런 기본적인 인생사의 원리를 남편은 그때는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뜨고 나에게만 해가 비치는 날은 없다는 것을. 모두가 비를 맞고 있을 때는 나도 그저 그 비를 온몸으로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내리는 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오히려 비만 맞으면 다행이지, 남들 다 안맞는 벼락마저 재수 없으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그때는 몰랐다.


 첫달은 그렇게 꿈에 부풀어 보냈다.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곧 올 연락을 기다렸다. 원서를 내고 낙방의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다른 회사에는 원서 조차 내지 않았다. 동시합격하면 서로에게 미안해지니 순차적으로 움직이겠다고. 그렇게 한 곳에 원서내고 발표나기까지 이삼 주일 흘러가 버리고, 한달에 두세 개 원서 내고 낙방하고를 반복한 채 9개월이 지났다.


 남편은 어느새 살이 빠지고 어깨가 작아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지쳐했다. 밥 먹는 양도 줄어들고 사람을 만나는 데도 자신이 없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그동안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호 받고 있었는지를, 그 울타리가 얼마나 자신을 약하게 만들었는지를, 그동안 바깥 사람들의 거칠게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른채 살았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그런 남편이 조금도 불쌍하지 않다. 이제야 남편은 세상에 홀로 선 자로, 세상을 처음으로 혼자 맞서고 있다. 남들은 더 일찍 세상에 나와 세상과 싸웠을 거다. 그러나 남편은 기업이 주는 시스템에 안정되었고, 기업의 스케줄에 인생을 맞춰 살아왔다. 혼자서는 한달의 스케줄도 혼자 운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남들은 어디서 돈을 빌리고 갚는지, 어디서 좀더 싼 물건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한달 버티고 살아나가는지 한번도 혼자서는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늘 '을'이었겠지만, 회사의 힘을 등에 업고 업체와의 계약에서는 늘 '갑'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본인이 이 인생에 '갑'인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좀더 더 많이 깨지고 더 많이 부서지기를 원한다. 세상에 발을 담그고 그 현실에 강하게 맞서 이겨내기를 바란다. 아니 이겨내지는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이런 게 세상이었다는 것만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내가 맞서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나는 수도 없이 거절당해 봤고, 아픈 아이를 업고 응급실에 수십 번 뛰어가 봤으며, 좀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먼거리까지 가 본 적도 있다.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몇번이고 낙심해 봤으며,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니며 찬바람을 맞기도 했다. 내가 세상이 그런 거라고 말하면, 그건 늘 내가 선택해서 그런 상황이 된 것일 뿐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그런 곳이었던 것이고, 자신만이 그걸 모르고 안전하게 살았을 뿐임을 깨닫길 바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비닐 우산 하나 쓰고 이 폭풍우 속을 걸어가고 있음을.


 우리 가정은 이제 좀 암담하다. 이전에 즐기던 많은 것들을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고 있다. 돈이 줄어드니 한계가 생긴다. 아이들도 이제 우리 가정의 한계를 안다. 스스로 삶의 어떤 부분을 줄일지 생각한다. 분명 아이들도 손해를 봐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이 삶의 축소가, 결코 꿈의 축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나는 그것을 중간에서 잘 조정해야 한다. 아이들의 기억에 이 시간들이 좌절의 시간이 아니라 아픈 성장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한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란 유한하고, 재화도 유한하고, 인간은 그 아래서 주어진 재화를 잘 운영하고 그에 맞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배우며, 인생의 쓴 바람을 잘 맞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물론 나에게도 이 시간이 새로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엎드려서 절망하고 원망하고 자책하며 내 남은 삶을 보내기는 싫다. 한동안 절망해 있었다.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 인생도 같이 끝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 삶에 주어진 새로운 절망의 시간에, 나는 새 깃발을 잡았다. 크게 실패한 적도 크게 쓰러진 적도 없는 어찌보면 너무 평온한 삶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날마다 삶이 이랬을 수도 있다. 나도 이제야 처음으로 삶이라는 실체를 민낯으로 맞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도 더 강해져야 한다. 비록 비닐우산 하나로 이 바람을 막고 있지만, 결국 이 길 끝에는 더 강하고 더 아름다운 내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겨내자는 말이 아니다. 그냥 이 시간을 끝까지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게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먼 훗날에 돌아봤을 때, 이 절망의 시간에 내가 어떻게 버텨나갔는지 흐뭇해하는 정도만 되면 좋겠다. 이 비바람의 끝에 다 찢어진 비닐우산 하나 건지고 나왔더라도, 그냥 쓰러지지는 않은 것만으로도 흐뭇해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지금껏 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무대의 주인공은 남편이다. 이제 남편이 어떤 역할의 배우가 될 것이냐는 그의 선택에 달렸다. 이제는 당신의 무대에 당신이 주인공으로 살면 좋겠어.

자, 시작해 봐.

 레디,

 액션!  


                                                                                                                 201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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