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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선아 또는 끌라라 Jan 09. 2023

차읍녀 일기

해가 바뀌며 늘어나는 숫자들 중 가장 좋은 건 관계의 연차다. 시간은 관계에 무게를 더해준다. 아무리 흔들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그런 묵직함을 주는 거다. 때론 가깝게 때론 느슨하게 오래도록 쌓아 나가고 싶다.

우리 이제 20년차

이젠 친구들만큼이나 소중해진 친구 신랑들.

7명 중 나 하나 남았으니 나의 결혼은 항상 최대 화두. 이 아저씨 아줌마들 아가씨 연애 얘기 좀 해보래서 썰 좀 풀어주면 두 눈 똥그랗게 뜨고 나는 솔로 시청자가 된다. 한 마디 하면 대체 몇 마디를 치고 들어오는 거야 진짜...


그래 맘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나도 너네 아가씨 시절 이야기 좀 풀어볼까 해^^^


-휴대폰에 알콜농도측정기를 달아서 일정 수치가 넘으면 전화가 안 걸리는 기능을 탑재하고 싶다던 내 친구 이젠 술 마시고 전 남자 친구한테 전화 걸 걱정 안 하며 살아 좋겠구나. 애 낳고도 너처럼 예쁜 승무원은 정말 못 봤다. 다 형부 덕이지 뭐.


-30살이 되기 전 꼭 결혼하고 싶다던 내 친구도 결국 만 나이로 성공했고 이제 어느덧 40을 바라봐. 같은 힙합 동아리 남자 친구 사귀어서 같이 제이지 콘서트 보러 다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호바호바. 유건이가 꽃잎을 만지작 거리니 오빠가 그러더라.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오빤 항상 네가 먼전 가봐.


-결혼 날짜 잡고 오빠를 처음 소개 하던 자리. 오빠는 우리에게 그랬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그때 난 어려서 이 결혼 안 하면 안 되냐고 말렸는데.. 지금 보니 가부장적 남자와 현모양처 내 친구 참 잘 맞는 죽이지. 얼짱 두 딸도 너무 예뻐.


-무슨 일을 하든 플랜 A, B, C를 준비하던 겁 많고, 걱정 많은 내 친구.. 순천 사는 남자와 소개팅하기도 전에 신혼집은 어디로 해야 하나 걱정하던 너. 결국 서울 사는 남자랑 결혼했잖아.. 이젠 그 쓸데없는 걱정들 좀 내려놓고 남편 어깨에 편히 기대 쉬길. 생각해보니 너만 유일하게 연하랑 결혼했구나 니가 위너다.


-9년의 연애 기간 동안 싸울 때면 늘 니 편 아니라 오빠 편든다고 참 많이 섭섭해하던 내 친구. 15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너한테 잘하는데 어떻게 오빠 편을 안 들겠어. 너네 오빠이자 이젠 우리 오빠이기도 한 참 좋은 사람.


-서로 동등한 크기의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던 독립적인 내 친구. 비숑프리제 닮은 외제 형부와 결혼해 너무 멋지게 잘 살고 있구나. 7년 세월 동안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까지 이어진 그 사랑. 아주 같진 않고 네가 좀 더 많이 사랑받는 거 같아서 친구인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나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란 말을 아끼지 않는 비흡연자를 만나 오래 오래 함께하고 싶어. 돌아보면   한마디가 부족해 너무 많은 이별을 했던  같아. 뚱뚱한 거도 안됨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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