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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MU Oct 31. 2024

수업시간에 아이패드로 게임하는 아이

<함께 하는 디지털 드로잉>

아이들이 수업에 가지고 오는 아이패드는 두 종류로 나뉜다.


패드가 아예 아이들 전용 패드인 경우와 부모님 꺼를 빌려 수업에만 잠시 들고 와 그리는 경우. 보통 전자는 패드 상태가 깨끗하다. 외관이 새것과 같이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라 패드에 깔린 앱이 깨끗하다는 거다. 학습을 위해 깔아 둔 교육용 앱 몇 개와 드로잉 앱을 제외하고서는 뭐가 없다. 어떤 학생은 사진첩 마저 깨끗하다. 아예 사진 기능마저 꺼둔 경우다.






문제는 후자다. 부모님 꺼를 빌려오다 보니 깔려 있는 앱이 한두 개가 아니다.


혹여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짚고 넘어가자면, 학부모님들이 어떤 용도로 아이패드를 쓰시는지 확인하고자 검사한 것은 아니고 수업을 위해 아이들에게 아이패드 사용법 몇 가지를 알려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패드를 만져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패드 저장공간이 모자라 그림이 안 그려진다거나 (제발 패드 여유 공간 확보 좀 해주세요), 앱이 사라져 안 보인다거나 (보통 패드 주인이 이 앱 뭐지? 나 안 쓰는데? 하고 지워버리시는 경우다), 파일을 주고받기 위해 에어드롭을 켜야 해서 설정 앱을 찾아주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이패드 상태를 보게 된다.


아무튼 다 큰 성인이 본인 패드 쓰는데 누구 허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원래 게임할 목적으로 구입했을 수도 있으니 온갖 게임을 깔아 둔걸 뭐라 할 순 없다. 다만,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 있는 날은 아이가 수업에 패드를 가져가야 한다고 패드 주인(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았을 테고 이걸 '패드 1일 무제한 사용권'을 받은 것처럼 맘껏 게임을 하려는 게 문제다.






작년 초에 대략 6개월 정도 가르쳤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항상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었다. 정시보다 15분 가량 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물어보면 이전 타임에 다니는 학원에서 늦게 끝내줘서 어쩔 수 없다고,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은 부모님 탓을 하곤 했다. 국영수 학원이 더 중요하지, 취미로 가볍게- 그것도 센터에서 저렴하게 듣는 디지털 드로잉이 더 중요하진 않지. 나도 아이 키우는 엄마니까 뭐가 더 중요한지는 안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또 등록했다는 어머님 문자에 감동받긴 했지만 디지털 드로잉 수업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니던 주요 과목 학원에서 더 일찍 나오라고 요구할 순 없다는걸 안다. 아이가 그렇다 하니 나도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그래 공부하는 게 힘들지? 너는 손이 빠른 편이고 기능도 야무지게 잘 활용해서 그리니까 결국 제시간에 완성하잖니. 괜히 늦어서 뛰어오다가 패드라도 떨구면 그런 참사도 대참사는 없으니, 너무 서둘러 오진 말고.


그러다 여름 즈음. 너무 더워 잠깐 걷기만 해도 넋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날이었다. 수업 시작 15분 전에 미리 모니터 세팅을 끝내고 일찍 온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 사 올 테니까 이따 오는 친구들한테 선생님 곧 온다고 전해달라 부탁한 후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수업하는 건물에서 편의점까지 걸어서 3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사들고 후다닥 뛰어 돌아오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열몇 개를 봉지에 담아 건물로 되돌아왔는데, 고작 4층까지 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강의실은 3층인지라 에이 그냥 걸어가자. 한 발 한 발 계단 위로 향하는데 2층에서 3층으로 넘어가는 계단에 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수업 시작까지 1~2분 밖에 안 남았는데 계단에 쪼그려 앉아 패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아이. 너무 열중해 내가 곁에 왔다는 것도 모르는 모습에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동안 늦게 온 게 이거 때문이었나. 이날 딱 하루, 진짜 쭉 학원 스케줄이 빠듯하다가 딱 하루만 일찍 끝나 이렇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이가 들을 만큼 든 어른의 촉이란 게 있지 않은가. 그냥 이 아이는 쭉 이 자리에 앉아 패드로 게임을 하다 들어왔을 것이다. 판단이 빠르게 서고, 나는 화가 났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귀엽기도 하고 또 안쓰러웠다. 게임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아이가 가지고 다니던 패드는 아빠 패드였고, 그 패드 안에 온갖 앱들이 깔려있던 것을 기억한다. 앱스토어 순위권에 진열된 게임들이 빼곡하게 깔려있던 것도 기억한다.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화들짝 놀라 급히 패드를 끄는 아이의 떨리는 손이 보였다. 내 판단이 맞았다. 내가 뭐라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는 비밀...-, 그  오늘만.. - 아니 그 아예 -.. 절대 -.. 아 그게 아니고 -.. 아이다운 변명과 부탁이 쏟아져 나왔다. 정리하자면  원래는 주말에 한 시간씩만 패드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긴 했는데, 지난 주말에 뭘 좀 하느라 10분 정도 덜했어서 지금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하니 엄마한테 말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 아 그런데 부탁이 있다면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말을 잇는다. 그동안 늦게 들어간 것도 말하지 말아 달란다.


혼낼 생각이 없었기에 웃으며 아이스크림 사 왔다고 들어가서 같이 먹자 했더니,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뒤따라 왔다.


항상 여기서 게임했어? 덥지 않았어?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게임이 인기 있어? 선생님도 그거 좀 해봤어. 선생님 게임 못할 거 같지? 은근히 잘해. 선생님도 너만 할 때 몰래몰래 게임하고 그랬어. 아 그리고 앞으론 계단에 쪼그려 있지 말고, 강의실 들어와 있어. 강의실이 에어컨 빵빵해서 시원하잖아. 대신 정각부터는 드로잉 하는 거야 알았지? 그림 다 완성하고 수업 끝나면 선생님이 정리하고 문 닫을 때까지는 또 너 자유시간이야. 부모님한테 말 안 할게. 너 어차피 오늘 안 걸렸으면 쭉 계단에 있었을 거잖아. 그렇지? 이왕 있을 거 시원한 곳에서 있어.






제우스가 판도라한테 상자를 맡기며 열어보지 말라 했지만, 진짜 판도라가 평생 열어보지 않을 것이라 믿었을까? 아이에게 패드를 맡길 때 아이가 진짜 수업시간 땡! 하면 패드를 열고 수업 끝! 하면 닫을 거라 믿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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