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 아사카와 지로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막연하게 글을 써보자고 떠올리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정해지면 그 글에 목적성이 뚜렷해진다. 편지를 떠올리면 쉽다. 나이가 많이 든 부친에게 쓰는 편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에게 쓰는 편지, 가까이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기 부끄러운 지인, 상대에 따라 할 말은 다 다르다. 그 세세한 마음 하나하나를 다 글에 담을 수 없지만 두루뭉술하게 덩어리지게 만들어보면 글의 독자가 정해진다.
"내가 최근에 책 한 권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시간 낭비한 것 같아 불쾌했어."
한 지인이 책 한 권을 두 시간에 걸쳐 읽었는데, 남는 게 없다며 불콰한 경험이라고 투덜거렸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 말이 매번 나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나는 독자를 정한 후에는 이글을 '왜' 쓰는가를 정한다. 내가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집중한다. 그 커다란 메시지를 통해 가지를 뻗고 나면 잔가지들이 솟아난다. 이야기에 생기가 살아나고 힘이 생긴다.
글을 쓰는 건 어찌 보면 아주 쉬운 일인 것 같음에도, 어려운 일이다. 주절주절 수다 떨듯 말을 늘어놓다가, 처음으로 돌아가 흩어진 말들을 모아 글로 엮어야 한다. 나는 글을 오래 묵히는 편이다. 장맛을 내는 장인처럼, 글을 한번 쓰면 한 달 뒤에 보고 수정하고, 글을 완성할 때 한 번 더 고친다. 그리고 1년 뒤에 다시 수정한다. 그리고 또 1년 뒤에 수정한다. 나의 글은 보통 3년 뒤에 활자가 되어 나온다. 다른 이들은 내가 글을 빠르게 써서 책이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써둔 글들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써둔 글을 과거의 내가 조금씩 고쳐, 지금의 내가 다듬는 것이다.
가끔은 엮어진 글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이 글은 별로야 하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곳에서 반짝일 때가 있다. 무수한 재고가 되어 내 마음에 멍에가 되어 외면할 때가 있지만 오늘 나는 한 서점에서 이 책이 많이 팔린다고 대량 입고 제안을 받았다. 제목처럼 내가 애독자가 되어, 내가 읽고 싶었고 보고 싶었던 책을 만들었다. 참 모를 일이다. 다들 별로라고 외면했던 책인데, 처음 나는 분명 잘 팔릴 거라고 뿌듯했고 엄청난 작업을 했던 글이었다.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바로 툭 하고 튀어나오지 않듯, 반응도 바로 곧 티 나지 않는다.
지치지 않고 열렬한 애독자가 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오래, 길게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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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들은 스스로를 잡지의 가장 영렬한 애독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관점에서 잡지를 모니터링 해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