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화나고,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다.
사람의 감정은 대게 희로애락으로 표현이 된다. 나의 감정이 보편적으로 우울함에 가깝다면, 어떤 우울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어떤 우울'이라는 말이 우스울 수가 있다. 우울함이라도 같은 우울함이 있는 게 아니다. 즐거움 끝에 오는 허무한 우울, 슬픔과 동반되는 우울, 이유 없이 오는 우울. 너무 많은 우울함이 있다. 나는 그 우울을 무방비하게 마주해 항상 지는 기분이 든다. 한번은 교수님께 '불안할 때는 약을 먹어 해결하지만 우울할 때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할까요'라고 질문 한 적 있었다. 그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우울은 약이 없어요. 스스로 벗어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우울함이 쓸모없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는 우울함이 매우 도움이 된다. 마음을 떠다니는 조각들을 주위다가 이어보면 멋들어진 글이 되기 때문에, 우울을 한 번씩 즐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속절없이 그 감정에 무너질 때가 문제이다.
가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히 즐겁다. 화가 났다. 라는 일차원적인 감정이 아닌, 나도 모를 감정에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감정 백과사전이 있으면 어떠냐는 생각을 한다. 수만 가지 데이터베이스에서 내 감정을 집어넣고 검색을 할 수 있음, 편리할 거 같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이니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울할 뿐만 아니다. 얼떨떨함에 즐거운 감정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즐거우면 마음껏 즐거워하고. 불안에 점철되어 가려진 즐거움을 끄집어내어 그 불안을 죽이고 크게 소리 질러 즐거워하면 좋지 않겠는가.
우울증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한가지 착각하게 된다. 우울증약을 먹으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냐고. 감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가끔 남편은 나에게 묻는다. "지금 무슨 기분이야?" 예전 같았으면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까르르 아무 말에도 자지러지던 내가. 아무 반응 없이 입 다물고 걷기만 하니, 기분이 좋은지 안 좋은지 멍하니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그럴 때면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나의 감정이 죽어버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