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살고 시험에 죽고

시험에 대한 아이와 부모의 생각차이

by 손 영



‘시험을 잘보다’

10대들의 생각 : '친구 아무개보다 잘 보다'
부모의 생각 : '90점 이상 (또는 95점 이상) 점수를 받다.'

'시험공부를 하다'

10대들의 생각 : '문제집을 풀다'
부모의 생각 : '문제집을 풀다'

'시험 끝나는 날' 에 대한

10대들의 생각 : '놀기 시작할 때'
부모님의 생각 : '결과에 따라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때'


중학교에 올라가서 처음 본 영어시험에서 55점을 받아왔다고 하면서 근심 가득한 얼굴로 상담을 하러 온 엄마와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90점 이상을 매번 받아오던 아이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이 엄마에게 55란 숫자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숫자였던 것이다. 당장 내일 세상이 끝날 것처럼 펄쩍 뛰며 걱정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도 ‘내가 영어를 이렇게 못하는 구나’하고 죄책감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다음번 시험에서 이 아이는 48점을 받았고, 엄마의 걱정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그동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아이의 말은 엄마와는 조금 입장이 달랐다.

“저희 영어 쌤이 문제를 엄청 어렵게 내시거든요. 지난번 중간고사보다 이번 시험이 훨씬 어렵게 나와서 영어 전체 평균이 50 몇 점이라고 그랬어요.”

문제가 어려워서 다른 아이들도 다 못 봤다고 항변하는 아이가 왠지 억울해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전제 조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점수가 40 몇 점이 뭐니? 반도 못 맞췄다는 게 말이나 되니?”

아이를 타박하는 엄마의 심정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 이후에 과연 아이가 영어 공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대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점수를 보면서 걱정하는 엄마도, 문제가 어려웠다고 하는 아이도 틀린 것은 아니다. 100점 만점에 몇 점을 받는지를 성취도라는 면에서 점검하는 점수의 의미도 분명히 있고 다른 아이들의 점수와 상대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둘 다 틀렸다. 그것은 바로 시험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과의 비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엄마 눈에는 점수라는 것이 보인다. 지난 시험의 점수와 이번 시험의 점수. 눈에 보이는 그 숫자들은 비교하기도 편하다. 지난번보다 높으면 잘 본 것, 낮으면 못 본 것.

아이 입장에선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가 보인다. 나보다 잘 본 애가 몇 명인지가 관건이다. 옆 짝꿍 철이보다 높으면 잘 본 것. 낮으면 못 본 것.


하지만 학교에서의 시험의 목적은 그동안 내가 배운 교과목에 대한 이해도와 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시험지의 점수를 보고 스스로 ‘내가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공부가 소홀했구나’라고 피드백을 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아마 지난번보다 점수가 낮은지 높은지나 옆자리 친구보다 못 봤는지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험지 안에 담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공부의 성취와 성장’을 부모와 아이가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모와 아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희한한(?) 경우도 있으니 바로 시험공부를 하는 방법에 관해서다. 이들 모두가 시험공부는 ‘문제집’을 풀며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험 기간인데 공부 좀 많이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네, 완전 열심히 했어요. 문제집 3권이나 풀었어요.“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모님들도 ”시험 기간인데 사 준 문제집을 펼쳐보니 하나도 풀지 않았어요“ 하면서 ‘문제집 풀이 = 시험공부’라는 등식을 증명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집을 푸는 것이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험공부는 문제집만 푼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교과서와 노트 필기, 부교재, 선생님의 강조 사항 등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익히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문제집 풀이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일부 아이들은 문제집에 답지를 베껴서 보여주기 용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베끼지는 않더라도 대강대강 한번 풀어보고 ‘문제집 다 풀었으니까 시험공부는 할 만큼 했어’라는 생각을 스스로 갖게 되는 것 자체가 사실 더욱 큰 문제이다.



다음으로 시험이 끝난 후의 부모와 아이의 입장인데, 시험이 끝나면 부모님은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아이는 시험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든 그렇지 않은 학생이든 간에 시험이 끝나면 모두들 몸과 마음이 확 풀어진다. “시험 끝났으니 이번 주는 놀아야죠. 언제 또 놀겠어요. 한 달 뒤면 또 기말고사 기간인데” 하며 당당하게 놀 권리(?)를 주장한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이제는 부모님들이 대거 민족의 대이동을 감행한다. 시험 결과를 가지고 학원을 옮기는 시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시험이 끝나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운 충전을 하려고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나 시험 결과에 따라서 보완점과 대책을 마련해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나 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부모와 아이에겐 그동안의 시험을 준비 과정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돌아보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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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정말 시작해야 하는 날은 바로 시험이 끝난 날이다. 진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날에는 시험 결과를 토대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공부 계획을 세우고 빠른 시간 안에 행동에 착수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험이 끝났으니 놀 생각만 하고 있고, 부모님은 시험을 못 봤으니 학원이나 과외를 알아보러 다니고......이러다 보니 또 다른 갈등의 빌미가 만들어지면서 다음 시험 역시도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마는 것이다. 가뜩이나 공부하기도 힘든 10대들에게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시험은 더욱 괴로운 연중행사일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들에게 내가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선생님, 시험은 누가 만들었어요?”라는 것이다. 지식인에 물어봐도 그놈의 시험을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많이 듣다 보니 이젠 나도 궁금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심전심인가? 시험을 만들어 낸 그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이들이 바라는 것처럼 혼내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10대들에게는 시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시험에 맞서는 자세를 알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시험은 10대의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입사 시험을 치러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해도 면허 시험을 봐야 한다.

그뿐인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상대방과 나의 여건과 환경을 고려하여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결혼과 양육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넓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수많은 과정은 모두가 시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험을 이처럼 ‘나 자신에게 합당한 역할과 자격을 부여하는 기회이자 과정’이라고 여긴다면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는 시험의 과정을 마냥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시험이란 나 자신의 그동안의 발전과 성장 여부를 측정하는 하나의 과정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시험을 통해 우리가 갖춘 능력을 인정받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면 우리는 쉽게 낙담하고 좌절하게 된다. 나 자신의 발전을 확인받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일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노력을 기울여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노력의 양이나 질이 적절치 않았거나 부족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머지않아 그 시행착오를 수정하여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재차 확인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 대표 선수들이나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은 4년마다 한 번씩 그 시험의 무대에 선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그 한 번의 시험 무대를 위해서 쏟아 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백 명의 선수들 중에 시상대에 올라 환호를 받는 사람은 단 세 명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또다시 다음 4년 후를 기대하며 더 많은 노력과 연습을 하지 않는가.

그러니 10대들에게 1년에 적어도 네 차례 이상씩 꼬박꼬박 찾아오는 자기 평가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학생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자녀가 이번 시험을 망쳤어도 너무 호들갑을 떨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10대들에겐 새털같이 많은 날들과 또 다른 평가의 기회가 널려 있지 않겠는가. 다음 시험을 기대하며 이전보다 한 발짝씩이라도 나아지는 나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면 10대들을 그토록 괴롭히는 시험도 언젠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오길 기다리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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