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부석사엔 부석이 떠있고

여인의 정성은 위대한 일을 만들곤 한다.

by 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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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로 이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막길이다.

천년 사찰답게 규모도 크고 주변도 관리가 잘 되어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건립하였다는 부석사.

浮石 은 떠있는 바위를 말하는데, 부석사엔 정말 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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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의 설명을 옮겨보자면,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송고승전』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한 여인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은 종종 위대한 일을 만들어낸다.

부석사도 그러한 과정으로 우리앞에 서게 되었나보다.


선묘란 여인은 누구일까. 무량수전 옆에 그녀를 기리는 사당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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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흠모한 정성으로 용이되어 바다를 건너고 바위가 되어 도적을 물리치다니..

어쩌면 선묘는 이 세상 모든 남성들의 도전을 보살피는 이땅의 모성상인지도 모른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꼽히는 무량수전에 들어서니 천년세월을 증명하듯 거대한 고목기둥들이 세월을 버티고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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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후의 세상까지 현재의 어떤것이 남아있을거라고 예상한 것일까.

말없이 각자의 무게를 버티며 풍파의 주름을 늘려온 나무들은

아마도 무량수전 앞에 탁 트인 세상의 풍치를 관망하여 그 오랜 희노애락을 지켜보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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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위에서 바라본 경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격찬했듯이 장관이었다.

저 아래 세상은 서로 닿으면 전염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이리저리 피하고 두려워하는 혼동에 쌓여있건만

하늘과 바람과 구름은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양 유유롭기만 하다.




부석사를 눈에 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이곳을 자신의 무진이라고 소개하던 친구가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있는 그 수많은 사찰들 가운데

유독 이곳 부석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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