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이 되었다.
집에는 큰누나의 마이마이가 하나 있었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그당시 모든 학생들의 꿈의 물건이었던 마이마이.
큰누나는 일찌감치 공부하는 테이프를 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고등학교때 그걸 얻어냈나보다.
나는 국민학생이었기에 잘은 몰랐지만 고등학생이었던 다른 두 누나들은 큰누나에게만 허락된 마이마이라는 문명의 핫 아이템에 대하여 동경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한대 밖에 없는 마이마이를 둘러싸고 우리집에서는 세 누나들간의 혈투(?)가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다른 두 누나들이 소풍을 가거나 친구들과 어디 놀러갈때 이것을 몰래 훔쳐가지고 나가곤 했던 것이다.
심하게는 새벽에 헤드폰을 끼고 자고 있는 큰누나의 머리에서 몰래 빼내어서 날이 밝기도 전에 먼저 나가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당연히 그날 저녁에는 유혈이 낭자한 푸닥거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두려움에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곤 했었다. ㅡ.ㅡ
이 마이마이도 큰누나가 대학생이 되고 이삼년정도 되자 집에서 한가롭게 굴러다니는 물건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그걸 듣는 일이 잦아졌고, 누나들도 어린 동생이 듣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나도 폼을 한번 내고 싶어서 동네 뒷산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을때 이 마이마이를 장착하고 간 적이 있다.
헤드폰을 끼고 아버지의 카메라까지 어깨에 메고 갖은 똥폼을 잡고 뒷산을 올랐지만
내 첨단 아이템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 늘 그랬지만.. 그때 내또래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6학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TV나 연예인들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전히 남자아이들은 축구나 오징어를 하면서 노는게 제일이었고 여자아이들과는... 글쎄 왜그런진 모르지만 거의 상대를 안하고 지냈다.
조숙한 어린이는 그래서.... 좀 외로웠다.
그런 마이마이로 자주 들었던 팝송중에는
당시 혜성처럼 나타나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Aha 의 <Take on me> 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삼성 마이마이> 와 경쟁제품이었던 금성의 카세트 플레이어 <아하>가 있었다.
삼성과 금성은 난 이름도 비슷해서 무슨 형제회사인줄만 알았으나... 그들의 경쟁은 참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었던 것 같다.
잘생긴 서양오빠 세명이 모인 그룹 A-ha는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하가 경쾌한 신스팝음악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을때
내딴에는 삼성과 금성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반대편 그룹 하나가 있었는데, 그들이 wham 이었다.
개인적으로 아하의 모턴하켓 보다 왬의 조지마이클이 훨씬 잘생겨보였고
노래도 왬의 노래가 더 좋았다.
특히 둘째누나가 조지마이클을 좋아해서 늘상 왬의 테이프를 틀어놓았기에 더 귀에 익숙했던 것 같다.
2021년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wham의 노래를 들을 수 밖에는 없는데,
누구나 알고 있는 <last Christmas> 가 있기 때문이다.
뭐 어린 친구들은 이노래가 징글벨 같은 캐롤로 알수도 있겠지만
80년대의 크리스마스에는 거의 이 노래만 들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한가지 고백하자면, 이때 나는 last 의 뜻을 '마지막' 으로만 알고 있었다.
아마도 영화 <라스트 콘서트> 에서의 last만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던 듯 싶은데..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내용은 당연 알수 없었지만 이 곡이 <마지막 크리스마스> 라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왠지 슬픈 노래라고 여기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신나고 즐거운 것이 당연했기에 나로서는 매우 의아한 느낌이었다.
뭐 지금 다시 들어보니 여전히 신나는 곡은 아닌듯 싶다.
요즘은 크리스마스도 예전같지 않아서 그런가..
추운 겨울날에도 씩씩하게 뛰어놀며 발개진 얼굴로 들어오면
꽁꽁 언 손을 녹여주던 엄마와 누나들이 있던 그때의 겨울날.
그 온기와 함께 추운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던 겨울의 노래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추운날이 더 싫어지는 게 가끔은 안타깝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