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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중년 마크 Dec 19. 2021

1984년, 빅브라더 대신 보이조지

팝송 흥얼거리다 보니 영어잘하는 녀석으로 불렸다만...

1984년은 5학년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는 즐거운 시절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방과후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철봉, 씨름 등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최근 대히트를 쳤던 '오징어게임'의 그 오징어도 이때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속의 오징어게임은 다소 많은 인원이 필요한 놀이였다. 

두 편으로 갈라진 팀은 각각 공격과 수비로 맞서고 적어도 한팀에는 대여섯명 이상이 있어야 오징어존 안에서나 밖에서 다이내믹한 결투들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필요한 오징어 보다는 더 슬림한 버전의 '십자가' 라는 게임을 자주 했던 것같다. 


십자가 게임은 무척 단순한데, 십자가 모양으로 네모칸을 다섯개 그려놓고 네모칸 안에서 공격팀이 시계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수비가 밖에서 밀거나 붙잡아서 아웃시키는 경기였다. 



십자가 게임

(설명을 글로 할수가 없어서 급하게 그림을 그림..ㅡㅡ)


아무튼 이 십자가 게임은 두명씩 나눠서 넷이 하거나 심지어는 단둘이서 일대일로도 할 수 있는 편의성이 있어서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놀 수 있었던 간편게임이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와중에...


그런데 그즈음에 나에겐 이상한 소문이 붙기 시작했다. 

소위 '영어를 잘하는 애' 라는 수식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지금이야 유치원때부터 영어를 시작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지만 당시 국민학교에서 영어라는 건 굿모닝 땡큐 정도도 똑똑한 아이나 되야 아는 말이었고, ABC 알파벳도 아는 아이가 없었던 때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영어를 배운적은 없다. 알파벳은 누나들이 영어공부할때 구경했던 풍월로 구분할 정도는 되었지만 생활영어의 대화를 할줄 안다거나 이런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갑자기 영어잘하는 애가 된것은 단 하나, 자주 흥얼거렸던 팝송때문이었다. 


5학년때 내가 가사를 대강 외웠던 두 곡의 팝송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컬처클럽의 <Karma Chameleon> 이었다. 

이곡도 당시 빌보드 1위를 몇주동안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김기덕 아저씨나 이종환 아저씨의 방송에서 늘 들을 수 있던 노래였다. 

역시나 집에 있던 팝송책에 있는 가사를 누나에게 물어 소리나는 대로 받아적어서 따라 불렀더니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주변 아이들에게는 내가 하는 영어노래가 대강 그럴듯하게 들렸을 것이다.

게다가 이 노래는 후렴부에 "카마카마카마카마 카마카밀리언~ 유컴앤고 유컴앤고~" 가 반복되고

비트가 상당히 경쾌한 곡이기에 빨리 따라 부르는 스킬(?)이 아마 한층 더 청취자 아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의도치 않게 나를 영어잘하는 애로 만들어준 이 노래를 부른 컬쳐클럽의 보이조지는 

이름과 반대로 영락없는 여자모습을 하고 나타났기에 당시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솔직히 여장남자라는 이 이미지는 어린 나에게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리 이쁜 것 같지도 않고..)


https://youtu.be/JmcA9LIIXWw

컬쳐클럽의 <카마 카멜레온> 





다른 한곡은 에어서플라이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이다. 


이곡도 작은누나가 팝송책을 보면서 따라 부르다가 너무나도 많은 가사와 점점 빨라지는 리듬에 버벅대는 걸 보고 내가 한번 도전해보리라 하며 그 많은 가사를 또 우리말로 받아적어서 외웠던 기억이 있다. 

랩이란 것이 없었던 그당시로는 아마 가장 길고 많은 가사를 쉴새없이 쏟아내는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 그저 소리만 흉내내던, 그렇지만 그게 꽤나 즐거운 유희거리였던 그시절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이곡의 전체적인 가사 해석은 해본적이 없다. ㅎ


https://youtu.be/ogoIxkPjRts

 

웃긴것은 한번 '영어를 잘하는 똑똑한 아이' 가 되어버리고 나니, 

그 관성이랄까.. 아무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똑똑하고 공부잘하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물론 주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였겠지만.. 


그렇게 즐겁게 놀고 때론 우쭐대던 5학년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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