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느끼는 정겨운 사물들
어릴적 부터 외출할 때 마다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손수건이다.
이 흔한 사물을 가까이 지니게 된 것은 꽤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손수건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은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이전에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큰누나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80년대 초반 무렵이 처음인 듯 하다.
당시의 교복은 지역과 학교, 남녀를 불문할 것 없이 죄다 까만색이었는데 여학생 교복 상의의 깃은 하얀색으로 따로 떼어내어 부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에리’라고 불렀는데,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일본어의 잔재인 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에리는 옷깃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있다. (그렇다면 한국어인가..?)
아무튼 큰누나는 매주 이 하얀 깃을 빨아서 셔츠와 함께 다리미로 다리곤 했는데 다림질을 다 하고 나서 코드를 뽑은 후에 남은 잔열을 가지고 꼭 손수건을 다렸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수건은 그렇게 늘 코드 뽑힌 다리미의 잔열을 이용해서 다렸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려졌을 것이다.
네모 반듯하게 다려서 잘 접힌 손수건에 누나는 향수를 한 두방울씩 뿌렸다.
마치 어떤 의식을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내 얼굴에 손수건을 가져다 대고 ‘냄새 좋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고 여덜 살 밖에 되지 않은 코흘리개였던 나에게 그 장면이 딴에는 인상깊었나 보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그 후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는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이는 우리 엄마가 챙겨준 덕분이다. 그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국민학교였지만) 어린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죄다 코를 질질 흘리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하얀 가제 손수건을 가슴에 옷핀으로 붙이고 다녔다.
('가제'는 영어의 거즈 gauze를 우리식으로 부른 것이다. 하도 어려서부터 이 말을 듣고 자라서 나도 아직 가제손수건이라고 부른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하얀 가제 손수건을 수십장씩 가지고 계시는데 요즘같은 여름철에 어머니에게 가면 헤어질 때 꼭 손수건을 몇 장씩 챙겨주시곤 한다.
면 재질의 하얀 가제 손수건은 가격도 저렴하거니와 때와 장소를 가릴 것 없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아마 아기를 길러본 사람은 다 알텐데, 아기 목에 두르고 수시로 얼굴과 입을 닦아 주는 용도로 아직도 애용되고 있다.
고학년이 되면서 나는 아무런 무늬도 없이 하얗기만 한 이 가제 손수건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슬쩍 누나의 꽃무늬 손수건을 몰래 꺼내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반듯하고 빳빳하게 잘 다려진, 그리고 꽃무늬에서 원래 나오는 것 같은 향기를 머금은 손수건이었다.
가끔 자신의 손수건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말할 때도 있었지만 잃어버지리 말라는 말만 가끔 할 뿐 누나는 어린 동생의 무단 사용에 대해 크게 야단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누나 또한 손수건이 여러 장이었다.
손수건을 지니고 있어서 요긴하게 사용했던 몇 가지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1.
중학교때 축구를 하다가 친구 녀석이 넘어지면서 종아리에 큰 생채기가 났다. 피가 철철 흘렀고 발목도 삐끗했는지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당이었다. 아깝지만 나는 내 손수건을 꺼냈다. 피를 닦아 주고 붕대처럼 종아리를 묶어주었다. 여학생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친구가 다쳤는데 도움이 되었으니 하고 애써 쿨한척 한것 같다. 하얀 가제 손수건이 아니라 꽃무늬 손수건이어서 선뜻 꺼내기가 어려운 찰나의 고민도 기억나는데,, 그 후에 그 친구가 손수건을 돌려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2.
아마 고등학교였으리라. 미팅 자리에서 소지품을 가지고 파트너를 정하는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이런 게임은 그 당시 우리들에게도 옛날 추억의 산물로 알고 있던 터라 우리도 레트로의 유희를 즐기는 심정으로 재미로 한번 해보자며 소지품 꺼내기를 한 것이다.
남학생들이 변변한 소지품이 뭐가 있겠는가. 담배, 라이터, 동전, 그리고 그 옆에 꽃무늬 손수건.
여학생들은 손수건을 보고 웃었다. 신기해서 웃었겠지만 나는 속으로 기분이 좋았던 것같다.
그러나
가장 예뻣던 여학생은 담배를 가져가서 입에 물었다. 말보로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예쁜 여학생은 라이터를 들어 옆의 학생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자신도 한 대 달라는 제스추어였겠지.
제일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외모의 후덕한 여학생이 손수건을 들고 가만히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았다.
그때도 세상은 내 바람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 밖에도 수십년간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양한 용도로 덕을 보았다.
분명한 사실은 손수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늘 유용했다.
지금도 나는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손수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색상의 다양한 손수건을 가지고 싶은 컬렉팅의 욕구도 없다. 예전의 누나처럼 다림질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잘 접어서 눌러주면 손수건은 언제나 흉하지 않은 반듯한 모습으로 뒷 주머니에 쏘옥 들어간다.
향수를 한 방울씩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향수는 내 것이 아니라 아내것이다. 그래서 딱 한 방울만 뿌린다. 향수가 제법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딸에게도 어딘가에 데려다 주면서 내리기 전에 가끔 "손수건 있어?" 하고 물어보곤 한다.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빠꺼 가지고 갈래?" 라고도 몇 번 물어봤지만 "됐어' 라는 대답을 몇 차례 듣고는 이제 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긴 하다.
“요즘 손수건 가지고 다니는 남자 처음 봤네”
이제껏 많이 들은 말이다. 그 말이 왜 내게는 기분 좋게 들리는지는 모를 일이다.
손수건에 담긴 정서가 나름의 시절 낭만을 품고 있음을 나 혼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도 땀이 날 땐 꺼내어 땀을 닦고
아이가 음식을 흘렸을 땐 입을 닦아주고
뜨거운 것을 갑자기 만져야 할 땐 손을 보호해주고
누군가 눈물을 흘릴 땐 꺼내어 살포시 건네줄 수 있는 물건은
예나 지금이나 손수건 밖에는 없다.
요즘같이 무더운 날에
세수를 하며, 샤워를 하며 같이 슥슥 빨아서 툭툭 털어 널어 놓으면
바로 다음날에 다시금 반듯한 모습으로 함께 외출하면 무언지 모를 든든함 마저 있다.
내가 손수건을 아직도 애용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