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tomy of a Revived Church
얼마 전 <북샵(The Bookshop)> 이라는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봤다.
영화 속 배경은 영국의 한적한 해안가 마을, 그곳에 새로 이사 온 '플로렌스'는 오래된 빈 집을 개조해 조그만 서점을 연다. 그녀는 단지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작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동네엔 그런 게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냉소와 방해가 이어진다. 결국 '플로렌스'의 서점은 사라지고, 마을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 '예전의 일상'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떠올랐던 것은 교회의 모습이었다. 특히 '톰 레이너(Thom S. Rainer)'의『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Anatomy of a Revived Church)』에서 묘사한 "죽어가는 교회" 의 풍경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예배의 틀과 관습을 고집하며 새로운 사역을 거부하는 교인들을 보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진심도 있고, 신앙의 기억도 있지만, 그것이 "과거의 틀"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레이너는 이런 교회를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문제의 원인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복음을 들고 마을에 들어온 '플로렌스'처럼, 교회도 다시 살아나려면 먼저 자신을 직시하고 불편한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회복된 교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변화'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변화는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예배 형식의 혁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지만 꾸준한 기도 모임의 회복, 서로에 대한 책임의 고백, 그리고 유독한 관계의 정리 같은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레이너는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교회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말한 이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 기도의 힘을 믿는 한 사람, 끈질긴 한 사람'이다. 마치 영화 <북샵>의 '플로렌스'가 혼자였지만, 그 한 사람의 진심이 주변 사람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오래 전 대학청년부 시절에 목사님의 권유로 읽었던『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Ashamed of the Gospel), 존 F.맥아더』를 떠올렸다. 그 책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복음을 당당히 선포하지 못하고, 숫자나 체면, 명성에 갇혀버린 현실을 고발한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지금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진 채 죽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동시에 꿰뚫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읽은『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는 그 경고의 연장선 위에서, "복음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공동체만이 살아난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가 바로 살아나는 교회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죽어가는 교회나 마을이나 사람의 공통점은 같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 침묵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책을 펼치고, 변화를 말하고, 복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며 외면한다. 하지만 <북샵>의 '플로렌스'처럼, 그리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처럼, 누군가는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 변화가 시작된다.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는 세상 모든 교회를 향한 진단서이자 동시에 희망의 보고서다. 무너진 신앙 공동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노력에 복을 더해 주셨다." 이 메시지는 마치 '플로렌스'가 폐허가 된 집에 서점을 세울 때 가졌던 믿음과 닮아 있었다. 책을 덮고나서 나는 생각했다. 교회를 살리는 일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복음의 불씨를 다시 피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불씨는 한 사람의 결단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만약 내가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읽은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