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원 짜리 커피 캔을 들고 망설이다 빈 손으로 편의점을 나오는 길이었다. 빡빡한 삶에서 오는 공허함이 차오르려던 찰나 온기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는 크게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그저 따뜻하게 살 붙이고 있을 수 있는 생명체와 함께 살고 싶단 열망에 휩싸여 있었다. 작고 연약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떤 생명체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기다리는 몽글몽글한 털뭉치, 무릎 위에 앉혀놓으면 느껴질 갓 찐 호빵처럼 따끈한 온기, 손바닥에 마주 닿는 젤리의 말랑함.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입꼬리는 다 올라가 보기도 전에 곤두박질쳤다. 오랜만에 번진 웃음을 금세 멎게 한 건 그놈의 숫자들이었다. 사료비, 장난감, 특히 병원비 등, 한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비용들.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의 푸념을 통해 얼핏 들었던 숫자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대충 짐작해보아도 2,600원 짜리 편의점 커피를 망설이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액수일 게 뻔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월급에서 월세와 공과금, 통신 및 교통비와 최소한의 식비를 빼가며 남는 돈을 셈해보았으나 무력감만 더해졌다. 월세 계약할 때 동물은 절대 안된다며 학을 떼던 집 주인의 얼굴도 떠올랐다. 오랜만의 기대감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나는 고양이 또한 내가 쉬이 얻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되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안그래도 말려서 걱정인 어깨가 처진 입꼬리 만큼이나 내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포기할 게 많은 보통의 사회초년생 이었다. 인생의 기본옵션 외에 뭐라도 더 원하려 하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게 당연했고 그렇기에 포기는 꽤나 익숙한 일이었다. 덕분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다.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를 최대한 많이 찾기(라고 쓰고 '만들기'라고 읽는다.)'는 '잘' 포기하고 싶을 때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나는 반려동물에 관심이 없던 내가 왜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는지 묻는 과정을 통해 이미 정해진 답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면 뭘 할 건데? 궁극적으로 같이 하고 싶은게 뭔데? 답은 생각보다 술술 나왔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고양이를 키우면...퇴근하고 놀아주면 복잡한 머리도 비우고 좋을 거 같아! 같이 밥 먹고, 나른하게 누워 쉬고. 평일에 같이 있지 못하는게 미안하니까 주말엔 같이 쉬는 게 좋겠지? 고양이도 외로움을 안 타는건 아니라고 했어. 고양이는 산책을 안 좋아한다니 그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장난감 가지고 놀고 츄르 먹는 거 보고 있으면 귀엽겠다. 나 간식도 맛있는 거 열심히 찾아다 주고 진짜 잘 놀아줄 수 있는데. 하루종일 같이 뒹굴거릴 수도 있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이것들이 꼭 고양이와 함께 누리고 싶었던 감정들일까? 물론 그럼 더 좋겠지만 일단은 그냥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거, 나한테 필요한 것들 같은데? 고양이와 같은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이 내게도 필요했던 게 아닐까? 나는 고양이를 돌보면서 내 생활도 외롭지 않고 빡빡하지 않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돌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랬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좋은 끼니와 간식을 챙겨주고, 불편한 건 없는지 잠자리를 살펴주고, 외롭지는 않은지 수시로 신경 써주는 것.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한켠이 따스해지는 일들은 생각할수록 필요로 하지만 내가 나에게 해주고 있지 못한 것들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너무나 당연하게 소홀히 했던 부분들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는 새에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덜 불안한 미래를 위해 아끼고 참고 애쓰던 모든 일들 또한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로 인해 허전해진 내면은 어느새 관심과 보살핌을 원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24시간 함께 해야 하는 '나'에게서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다른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다가 아닌 행복까지 위해줄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도 중요한데 거기에 '나'도 해당될 수 있음을 몰랐다. 나도 내가 책임지고 돌봐주어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란 걸 잊고 있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어느새 균형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적정선을 찾지 못하고 미래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정신은 압박감에 쇠약해져 가고 있었고 불안은 습관이 되었다. 미래는 너무 멀게만 보이는데 현재까지 춥고 건조하게 매말라 가고 있었다. 그간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미래와 그걸 빨리 얻기 위한 방법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나의 매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삶의 방법이나 적정선, 균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지혜가 필요한 때였다. 나는 나와 다시 만나야 했다. 새로 만난 반려동물 친구와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서서히 알아가고 친해져야 하듯이. 소중한 한 생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마음을 다시 배워야 했다. 조금 늦게 알았으나 나에게는 나를 안심시켜줄 의무가 있었다. 내가 '나'를 위해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줄거라는 믿음, 나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다할 거라는 신뢰를 '나'와 함께 쌓아나가야 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하게 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언젠가 함께 할지도 모를 사랑스러운 생명들을 위해서. 더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위해서 나는 좀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현재에 주어진 시간에도 충분히 감사할 줄 알고, 다른 생명과 나 모두를 다정하게 돌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나를 잘 키워 보기로 했다. 나에게 좋은 집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신뢰감과 애정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다정한 내 편 말이다. 그 과정이 금방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습해보려 한다. 비록 내가 고양이만큼 귀엽지는 않겠지만.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P.S. 고양이에 대해 찾아보다가 알았다. 고양이에 대한 내 상상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판타지였는지. 미리 말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직접 키워본 적이 없어서 고양이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한다. 이 글을 보고 어이없어 하셨을 고양이 집사 분들께는 심심한 양해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