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워킹맘 일과 육아를 넘나드는 여정

2023 가을. 복직을 결심하다.

by 텐텐맘

돈이 없었다. 아니, 없을 예정이었다. 산전 휴직을 써서, 6월이면 무급 휴직으로 전환될 것이었고, 아이가 13개월 차에 접어드니 부모 급여도 50만원으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게다가 무급 휴직 기간 동안의 기여금(공무원 연금)도 문제였다. 매달 가진 돈에서 내거나, 복직 시 일시불로 내거나, 혹은 복직 후 매달 월급에서 두 배로 내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세 번째 선택지는 제외했다. 복직 후에 받는 월급이 너무 적으면 힘이 빠질 것 같았다. 첫 번째나 두 번째 안을 선택하면 부모 급여를 받아도 실제로는 제로에 가까웠다. 그야 말로 무급 휴직이었다.

휴직 하기 전에 마이너스 통장도 뚫어 놓고 목돈도 좀 가지고 있으라는 언니들의 말을 훌려들었던 대가다. 가지고 있던 목돈도 대출 갚는데 써 버렸다. 남편 월급으로 적자가 나지 않게 살림을 꾸려가는 것, 쉽지 않았다. 아니 대체 육아 휴직을 3년씩 꽉 채워 쓰는 사람은 얼마나 여유가 있는 거야? 돈 없어 복직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 나가서 일하자.

휴직 중에는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6월에 출산을 했고, 몸이 좀 나아지고, 아기도 유모차에 실어 데리고 다닐 만하니 벌써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문화센터리도 가 보려고 알아봤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그 흔한 마트 내 문화센터도 없었다. 아이를 카시트에 태워 판교나 죽전, 하남으로 나가야 했다. 서툰 솜씨로 아이 옷 챙겨 입히고, 분유물과 분유와 여벌 옷과 기저귀, 물티슈, 손수건, 쪽쪽이 등등을 챙겨서 운전까지 해서 문화센터에 갈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집에만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4시간 거리에 사는 엄마가 와서 3주~한 달씩 와서 계시다가 친정으로 가서 2~3주 계시다가 다시 오시기를 반복했다. 엄마가 와 계시지 않는 기간에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아이와 나 단둘이었다. 아이는 누워서 입면을 하지 못했고, 밤잠도 낮잠도 안아서 재워야 했다. 나도 잠을 자지 못해 좀비처럼 몽롱한 상태로 지냈다. 아이는 분유를 잘 게워냈고, 어디가 아픈 것처럼 우는 일이 잦았다. 내가 혼자 돌보다가 위급한 상황이라도 생길까 봐 무서웠다.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단 둘이 남겨지는 게 무서웠다.

같은 시기에 일주일 차이로 출산한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불안을 다독여 주었다, 퇴근길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전화를 주던 동료 선생님들이 있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연말 정산을 하러 직장에 갔던 1월의 어느날, 동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니 살 것 같았다. 빨리 복귀하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부장님 한 분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은 가정용 아니야, 산업용이야.” 그게 정답이었다.

나는 육아가, 전업 주부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다. 게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꾹 참으며 훌륭하게 해 낼 인내심도 없었다. 차라리 잘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리고, 아기에게 다른 방식으로 잘해주자. 보름쯤 후, 인사 이동이 있었고, 휴직 중 발령이 났다. 새로 발령 받은 곳에 인사드리러 가서, 한 학기만 휴직을 더 연장하고, 2학기에 복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1년 반의 육아 휴직을 끝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