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by 글똥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ㅡ"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p.11)


감사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기쁨 말고 무엇으로 표현하겠는가. 오늘이 내게 와 주어 고마운 날인 것을.


ㅡ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p.11)


숲에서 나는 그녀의 경이를 경험한다. 작년 가장 신비로웠던 것은 장마가 지나간 숲의 자리였다. 날마다 피고 지는 버섯들이 보고 싶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책하였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버섯, 내일은 또 얼마나 크게, 어디서 불쑥 나를 마중할까.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었던 자연. 때로는 장화를 신고 빗물 고인 웅덩이에서 철퍼덕 물장난도 치고, 두더지가 지나간 흙을 꾸욱 밟기도 하면서 동심의 세계에 머물기도 했다.


지금은 겨울, 텅 빈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때다. 모든 것을 비우고 사색에 들어간 겨울 숲은 오십을 지나온 나의 삶이 나아가야 할 자리처럼 다가온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처럼, 물기를 거둔 얼굴의 주름처럼 겨울은 앙상하고 삭막하지만 텅 빈 충만을 만끽할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녀가 만나는 호수의 오리와 물닭, 동면에 드는 뱀, 지저귀는 새들, 뛰어다니는 고라니가 나의 숲에도 있다. '이른 새벽의 서걱거리는 푸른 공기 속(p.58)'을 걷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인간계가 아닌 천상의 화원 같은.


ㅡ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p.65)는 제목부터 나를 온통 흔들어대는 시다. 본질적인 숲에 들면 비본질적인 세상의 언행들이 조금씩 씻겨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숲의 엄청난 힘이다. 경험해 보니 그랬다. 나를 맑히는 힘이 그들에겐 있었다.


ㅡ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p.65) 원 없이 볼 수 있는 계절을 지났다. 그러나 곧 그 계절은 다시 온다. 새로 흘러온 강물과 알에서 깨어난 굴뚝새들과 떨어진 씨앗에서 피어난 꽃들이 여름을 수놓는다. 다시 여름이 오듯, 내가 사라져도 나 아닌 다른 이가 여름을 살고 노래하고 기록하듯이. 자연은 그것을 슬픔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시간에 대해 슬픔이라고 하지 않아야겠다고 일깨워주는 것도 숲이다.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낙원, 프로빈스타운에 매료되어 남편과 그곳에 정착하여 50여 년간을 산다. 그녀가 예찬한 자연의 시는 '달까지 닿았다 돌아올 정도(p.157)'였다니 그녀의 일생이 참으로 부럽다. 그러나 내게도 그녀 못지않은 숲이 있다. 며칠 전에는 그곳에서 매화 가지 끝에 달린 뭉툭한 망울을 발견하였다. 곧 봄이 온다는 자연의 신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아침이 내게로 올지 알 수 없으나 그 시간들은 모두 나의 숲을 향한 찬사임을 기억하리라. 또박또박, 그녀가 찍은 방점의 끝에 나의 숲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녀의 '아침 산책(p.128)'처럼.



아침 산책/메리 올리버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 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공책과 연필을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