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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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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Oct 17. 2024

生의 악보


밤 열한 시,

콩나물국밥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는 친구와

아파트 벤치에 나란히 앉아

편의점 흑당밀크티 2+1을 마신다


하루종일 커피를 팔다 온 친구는 유월의 빗소리에 몸둘 바 몰라 나를 찾은 것인데


가로등 꼭대기의 높은 시와

소나무 가지의 푸른 솔과

청록잎의 아름다운 미와

아스팔트를 탕탕 두드리는 도의 음계가

심장에서 쿵쾅거리며 운명처럼 울려댄다고


창문을 닫아보지 그랬니


마구 그어진 빗금마다 물방울을 달고 악보를 펼치는 피할 길 없는 운명의 세레나데  앞에

 

밥벌이의 하루쯤, 엉거주춤하기로 작정했다며


우리의 생은 해마다 유월을 지나는 중이잖니

삼십일동안 날마다 흔들리는 중이잖니

마지막 한 날에 이르러서야 겨우 기대어보는 칠월의 막연한 맑음이잖니


구름의 집을 떠나야 이름을 가지는 비처럼

뜨거운 기계 안에서 죽어야만 사는 콩처럼


하나씩 버리고 내려 놓은 생의 자리에

이음줄과 붙임줄로 서로의 상처를 이어 주며

비로소 완성될 하나의 악보 같은 우리의 오늘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마지막 유월의 빗소리에 하염없는 우리의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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