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by 글똥

2025년, 나의 7월은 잔혹하다. 덥고 습하다. 기다리던 장마는 모감주나무와 자귀나무의 꽃만 펼치고 끝이 났다. 마른장마라니, 비도 안 오는 장마 속에서 폭염만 오롯하다. 갱년기의 증세는 더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얼음을 둥둥 띄운 보냉병은 필수, 선풍기와 에어컨도 빠질 수 없다. 덕분에 흘리는 땀도 거의 없다. 집에서, 사무실에서, 차에서 에어컨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럼에도 더위에 지쳐 퇴근과 동시에 내 몸은 소파와 한 몸이 된다. 생각하는 것도 게을러지고 쓰는 것, 읽는 행위도 만사 귀찮다. 어느 날, 숨만 쉬는 생물체가 공간을 이동하는 모습에 허탈함이 몰려왔다. 모처럼 맘을 잡고 카페에 들렀다. 출근 전, 책이라도 읽고 가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가볍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7월, 대학가의 카페는 한산하다. 오늘은 웬일로 손님이 여럿이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서니 모두 아는 얼굴, 주인장의 지인들이다. 시원한 레몬티를 들고 주인장과 독대를 한다. 나는 소설을, 주인장은 요리책을 펼쳐 놓았다. 오십 대의 느린 독서는 핑계가 많다. 두어 장 넘기는데 한참이 걸린다. 수다가 그리운 시간, 노안과 어두컴컴한 실내등만으로도 우리의 독서 결핍의 합리적 이유는 충분하다. 나처럼 그녀도 답답하던 차였을까.


쏟아내고 싶은 말이 내 안에서 달궈지고 있는 찰나, 그녀의 언어가 팝콘처럼 튀겨진다. 왕왕거리는 그 언어의 끝에 줄을 달고 짧은 응대가 내 안에서 튀어나온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그녀의 언어가 이제 콸콸콸 흘러넘쳐 공간을 잠식한다. 범람한 언어의 강에서 차라리 나는 헤엄을 치리라. 하늘을 보고 누워 유유자적하리라. 그녀의 목소리에 나를 담근다.


어쩌면 우리는 둘 다 답답한 갱년기였다. 나보다 먼저 달궈진 그녀의 인생이 밖으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묘한 공감대를 느낀다. 우리에겐 책이 아니라 끔찍한 수다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가 타 주는 레몬아이스를 마시며, 싱싱한 레몬을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우리는 7월을 버티기로 한다. 수다 속에 갱년기를 동반한 여름이 왈캉달캉 문지방 넘어가는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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