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퀄 세대로서 내리는 스타워즈 에피소드9의 호평
스타워즈 에피소드9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이하 라오스)어제 새벽 보고 왔다. 이에 대한 많은 혹평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난 개인적인 평가는 호평이었다.
먼저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평가할 때 무엇을 중점으로 평가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명백히 핵심은 ‘플롯’일 것이다. 영상미, 액션, 사운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것이 없지만, 디즈니에게 이것을 평가하는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정점에 선 기업이고 어지간한 디즈니의 작품들은 이 분야에 대해서 상향평준화 되었기 때문이다. (액션이 조금 단조로운 면이 없진 않지만 이 부분은 추후 얘기하도록 하겠다.)
결국 스타워즈를 평가하기 위한 핵심 관점은 ‘플롯’이다. 시퀄 3부작이 새로이 써나가는 역사가, 여기서 구축된 캐릭터와 가치관이 이후 스타워즈 세계관의 중심이 될 터였다. 플롯에 걸린 책임감은 큰데 비해 환경은 가혹했다.
클래식 시리즈는 이 전설의 처음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프리퀄 3부작 시리즈는 ‘모두가 다 아는 스토리’를 영상화 하는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애초에 거시적 관점의 플롯에 대한 비평이 무의미했다.
시퀄 3부작 시리즈는 레전드 세계관을 부정하며 시작했다. 과거의 영화화된 두 작품을 큰 줄기로, 폐기된 레전드 세계관에서 약간의 요소들을 가져다 쓸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리부트’의 목적을 해소해야 했으며, 시대정신에 맞는 플롯을 보여주어야 했고, 그와 동시에 과거 작품의 팬들도 만족시켜야 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야 하는 것은 덤이다.
물론 시퀄 3부작이 전부 제각각으로 놀아서 전반적인 합이 맞지 않았다는 지적은 백 퍼센트 공감하고,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보려는 핵심은 7-8에서 발생한 어긋남을 9가 어떻게 봉합하여 7-8-9 3부작을 융화시켰는지를 오로지 9의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에피소드7 : 깨어난 포스
별로 할말이 없다. 전형적인 스타워즈의 문법에 과거작들에 대한 오마주를 잘 녹여냈다. 무난하게 새로운 캐릭터들과 선악, 갈등 구조를 새로이 시작했다. 리부트 시퀄의 첫 작품에 기대되는 평범한 것들은 높은 퀄리티로 해냈다.
에피소드8 : 라스트 제다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호’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성은 공감하고 이해된다. 로즈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는 반란군 내의 일개 병사들에 대한 조명. 루크와 제다이 오더에 대한 부정. 해방된 생명체들과 평민들. 아무것도 없는 출생의 비밀 등. 루크가 죽음으로써 제다이 ‘오더’는 완전히 사라졌고, 포스를 사용하는것 처럼 보이는 노예 청소부를 보여주면서 ‘제다이’나 ‘스카이워커’등의 영웅이 과대표하던 포스를 ‘모두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들이 부정하고 싶은것은 단순히 에피소드7만이 아니었다. 부정하려고 한 것은 바로 EU 세계관이었고, 바로 스카이워커 일가들을 집중 조명하여 이루어지는 ‘영웅서사’였다. 이것은 ‘리부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무엇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에피소드8은 이를 위해 너무 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슈프림리더 스노크의 죽음이다.
라스트 제다이의 후반부에 반란군은 사실상 소멸한다. 하지만 이들이 대적하는 ‘악’이 대체 무엇인가? 슈프림리더의 퍼스트 오더였다. 하지만 스노크는 카일로 렌의 손에 죽고, 퍼스트 오더는 카일로 렌의 손에 들어간다. 그러면 다음작에서 카일로 렌의 퍼스트오더와 희망이 없는 반란군들 사이의 저항이 이루어질거라 생각되는가? 시청자가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스타워즈’인 이상, 카일로 렌은 벤 솔로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차기작의 ‘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악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레이와 렌은 계속하여 빛과 어둠 사이를 갈등할 것이며, 어떠한 계기로 렌은 전향하게 될 것인가?
라스트 제다이는 스노크를 어이없이 죽여버림으로써 이 부분을 완전히 오리무중으로 날려버렸다. 에피소드9 라오스의 여러 무리수들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
에피소드9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개봉하기 전에 알려진 정보.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라는 부제. 아 과연 JJ애브람스는 과거작품의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카이워커 사가’로 돌아가버리고 마는가? 라스트제다이를 부정하면서 소수의 엘리트 제다이들만의 영웅서사로 돌아가버리려는가. 이미 죽은 ’팰퍼틴’을 재탕에 삼탕까지 끌고오는 무리수까지 두어 가면서?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스노크가 죽은 이상 카일로렌의 위에 위치한 새로운 악이 필요했다. 새로운 악당을 만들 수도 있었고 과거의 악당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어느쪽이나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었고, 감독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레이의 혈통에 대한 ‘떡밥’을 회수할 수 있었으며 이를 구태의연하지도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전에 돌던 떡밥대로 레이가 스카이워커의 일원이었다면. 그리고 렌과 레이가 친척관계였다면. 너무 구태의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팰퍼틴의 손녀이자 시스의 후계자라는 설정은 예측불허했고 참신했다. 그럼으로써 ‘스카이워커’이지만 어둠을 추구하는 벤 솔로(카일로 렌), ‘팰퍼틴’이지만 빛을 추구하는 레이의 역설적 구도를 만들어 냄으로써, 선과 악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더 극적으로 연출해 낼 수 있었다.
레이와 렌의 관계를 더 얘기하자면, 광선검 액션 신은 정말이지 너무도 느리고 단조롭다. 요다와 두쿠백작, 팰퍼틴 등, 혹은 기계화 되어 둔중하지만 강력했던 로그원의 베이더보다도 힘도 없고 단조롭다. 그러나 본 작의 액션 신은 애초에 화려한 액션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 검을 섞는 행위 또한 레이와 렌의 ‘교감’행위의 일부인 것이다. 조금 더럽게? 비유하자면 자극적인 비쥬얼과 강렬함을 추구하는 남성향AV 보다는 두 행위자간의 정서적 교감을 추구하는(이라고 흔히들 표현되는) 여성향 AV에 가깝다. 그러한 의도를 가정하고 본다면 액션신은 나름 준수했다.
이제 제다이와 시스의 갈등, 그리고 은하 자유세력(+반란군)과 제국 사이의 갈등을 보자.
먼저 우주전쟁의 관점에서, 반란군은 소멸했으나 퍼스트오더 또한 구 제국에 비하면 미약했다. 앞서 말한 이유로 팰퍼틴과 새로운 함대라는 어마어마한 제국이 새로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 부분의 무리수를 감안하고 보자면) 결국 이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빛의 세력'이나 '반란군'이 아니라 변절한 스톰트루퍼들이었고, 자유세력의 모든 민간인들이었다.에피소드 8에서 추구했던 '탈중앙화'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제다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은 팰퍼틴과 레이, 그리고 전향한 렌이라는 세 당사자는 에피소드 6의 세 당사자 (팰퍼틴, 루크, 베이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립서비스로서 추가된 단 한개의 요소, 마지막 시스로서 모든 전대의 시스가 팰퍼틴에게 함게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제다이로서 모든 제다이가 레이와 함께 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한명의 초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영웅 서사를 희석시키기엔 많이 부족하다.
제다이의 관점에서 '탈중앙화'와 '과거의 부정'은 이 밖에서 볼 수 있다. '혈통보다 진한것'. 어찌보면 클래식의 한계는 바로 이 '혈통'의 한계에 갇혀있음이다. 평생을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I am your father' 한마디로 대표되는, 혈통으로 맺어지는 유착관계. 아나킨으로부터 이어지는 혈통과 긴밀하게 연결된 제다이의 가능성.
라오스는 포스의 밝은 면을 대변하는 레이를 팰퍼틴의 혈통으로 설정함에 따라 이것을 깨뜨렸다. 한 솔로와 레아 오르가나의 아들인 벤 솔로는? 사실상 렌을 전향시킨것은 이들의 부모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렌의 전향은 오로지 '혈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렌의 전향에서 이들 부모의 역할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가족애에 가깝다. 질풍노도의 청년기에 집을 뛰쳐나가 온갖 풍파를 겪으며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아들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부모의 역할에 가깝다.
한편 레이는 팰퍼틴의 자손이면서도 스카이워커인 레아에게 교육을 받는다. 자신의 원 혈통인 팰퍼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며,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스카이워커라고 칭한다. 이것은 혈통중심의 영웅서사였던 레전드 세계관을 무너뜨렸으되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은 살렸다. 스카이워커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웅서사를 깨트리는것이 아니라,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을 해방시킴으로서 이뤄낸 것이다.
에피소드 7에서의 혈통주의와 영웅서사의 떡밥을 던지고, 에피소드 8에서 이것을 부정하고 해방해버리고. 이 부정합을 에피소드 9에서 잘 조화시켜냈다. 시퀄 3부작이 제각각 합이 안맞았지만, 에피소드 9를 통해 이는 정-반-합의 구도가 되어 융합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7이 추구했던 바, 8이 7을 부정하고 새로이 추구했던 바를 모두 적절히 조화해낸 것이 바로 9의 플롯이다. 비록 구멍이 많은 플롯이었다지만, 이 어려운일을 해낸 각본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물론 깔 것은 많다. 그러나 까는 사람은 어쨌거나 많고, 여기에 비판까지 적자보면 분량이 너무 많아지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아쉽긴 하지만 에피소드 9는, 7과 8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조화를 기대 이상으로 잘 융화시켰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높은 평가를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