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젠더이슈 소란에 대한 단상
시대가 시대다 보니 성소수자 담론이니 커밍아웃이니 하는 단어마저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상화된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별, 인종, 성적지향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는 유행을 넘어 상식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게임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단적으로 보면 이미 2016년에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공식 설정에서 캐릭터 '트레이서'가 레즈비언임을 공개 한 적이 있다.
다인종, 다국적, 돌연변이, 로봇, 혹은 늙은 여인마저 캐릭터로 등장시켜 전투의 전면에 참가시키는 오버워치는 이러한 다양성의 관점에서 게이머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런데 유독 이번에 공개된 솔져76가 게이였다는 설정에 대해 게이머들 커뮤니티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불과 2,3년 사이에 달라진 이러한 온도차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과 2,3년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사실, 문화소비자들의 공간에서 담론이 흐르는 데에는 2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트레이서와 솔져76 사이에는 공통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2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그리고 그 세월동안 있었던 사건이 이러한 담론의 장에 끼친 변화들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지 한번 하나씩 생각을 끄집어내보자.
게이머들과 젠더 이슈간의 관계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게이머게이트 사건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해당 사건은 2014년으로 이미 트레이서 공개보다도 2년이나 과거의 일이다. 이 사이의 변화를 언급하는 데에는 큰 의미를 두기 힘들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게임계에 젠더 이슈가 범람했느냐고 따지면 생각만큼 그렇지는 못했다. 오히려 영화, 드라마, 기타 여러 대중매체들에서 젠더이슈와 다양성을 다루는 방향과 질적 / 양적으로 부족하다고 볼 면이 많다. 그와 함께 게임계 내부에서 이러한 담론에 대한 저항도 타 매체에 비해 유독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게이머들이 오로지 게임이라는 하나의 대중매체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 타 매체에서 느껴지는 젠더 이슈에 대한 피로감은 게이머들의 이번 사건에 대한 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스타워즈 시퀄 영화 시리즈인 라스트제다이와 관련된 논란은 이와 같은 범-대중매체적인 젠더이슈에 대한 피로감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사건은 2018년에 있었던 배틀필드 논란이다.
게임 또한 오랜 전통을 가진 문화이고, 두터운 팬 층을 가졌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으며, 배틀필드나 콜오브듀티와 같은 FPS계에서 '고증'은 그와 같은 핵심가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배틀필드5가 공개되었을 때 '의수'를 단 '여성'과 같은 유로운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세일즈 포인트였을지도 모르지만, 고증이라는 전통적인 핵심가치의 측면에서는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게이머들의 시선 또한 편협하다고 볼 수 있는 점이 많다. 고증이 핵심가치였을지는 모르지만 절대적으로 우선순위를 가진 가치는 아니었고, 배틀필드 개발진의 새로운 시도는 한번쯤 시도 해보고 평가해봄직했다. 그러나 개발사의 직원들은 이에 대한 팬층의 우려를 인종차별주의자 등으로 편협하게 몰아세웠으며 'uneducated'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팬들을 조롱하였고,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한편 2018년에는 블리자드가 특히 팬층을 신뢰를 크게 잃은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디아블로 임모탈의 공개가 그것이다.
오버워치의 개발사인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의 명작 PC게임들을 출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충분한 완성도를 내지 못한 게임은 과감히 출시를 연기하거나, 혹은 아예 게임 자체를 엎어 버리는 등의 장인정신을 보여주었다. 비록 최근 스타크래프트2, WoW 등이 그저 그런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블리자드는 오랜 세월 두터운 팬층을 만들었으며 당연히 게이머들 또한 블리자드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블리즈컨에서 유명 프랜차이즈인 디아블로 시리즈를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하겠다는 소식을 공개하자 팬층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대해서 추가 설명을 하자면, PC게이머들과 모바일 게임 사이에는 생각보다도 두꺼운 장벽이 존재한다. PC게이머들에게 모바일 게임이란 틀에 박힌 듯 똑같은 시스템에 겉모양만 바꿔서 찍어내는 게임. 게임성보다도 반복 노가다나 현질유도로 한탕 벌어먹으려는 게임 정도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특히나 장인정신을 강조하던 블리자드가 아니던가?
여기에 관계자는 행사 당일의 싸늘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농담삼아 '여러분 핸드폰 없나요?' 라고 한마디 했다가 집중 포격을 당하고 말았다. 해당 영어 문장 "유가이즈낫해브폰?"은 국내에서도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유행어가 될 정도로 화자되고 있다.
여기에 이어 2018년 하반기에 연달아서 블리자드에 대한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일단은 재정구조가 악화되었고 모기업인 액티비전과의 불화설이 대두된다. 직원들에 대한 열정페이 논란이 등장하고,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적자'들은 블리자드가 초심을 잃게 하고, 핵심 개발자들이 유출되고, 모바일게임과 같은 '게임성따위 갖다버리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게임이나' 만든다는 우려를 가속시켰다.
배틀필드 논란과 블리자드의 논란은 2018년 게이머들 사이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젠더 이슈에 지치고, 이제 블리자드에 실망한 사람들이 트레이서 때와 달리 솔져76의 설정 공개를 비난하는 이면에는 이러한 사건들을 빼놓고 얘기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PC논란의 전개 방식은 국내에서 해리포터 영화 "그린델왈드의 범죄"의 내기니 논란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기존의 팬들에게는 PC 추구를 위해 무리한 설정확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관계자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더더욱 논란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갖는다.
관성적/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과거의 팬들.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신규 컨텐츠의 제작자들. 그들은 어떤 충돌 지점을 마주할 때 반목하곤 한다. 최근에 젠더이슈와 PC추구는 여러 매체에서 그 반목의 핵심이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에도, 배틀필드에도, 혹은 해리포터의 신작 영화에도 논란을 키웠던 것은 관계자의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여기엔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컨텐츠의 전통적 가치를 지향하는 팬층을, 단순히 그러한 젠더이슈와 PC추구에 반발하는 사람으로 가볍게 평가해 버린 데에서 비롯했다.
어쩌면 콘텐츠의 제작자들에게 다양성의 추구와 더불어서, 팬들의 불만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수용하는 관용적인 마인드 또한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관용'이라는 단어는 다양성 존중의 핵심이 아니던가?
이하는 조금 사족일 수 있는 단상들이다.
블리자드의 FPS인 오버워치는 첫 발매 당시 국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게임계에 풍파를 몰고 왔다. 순간적으로 국내 PC방 점유율 1위인 LOL을 압도적 점유율로 추월하여 50%에 육박하기도 하였으며, LOL에 이어 국내 2위였던 서든어택을 골로 보내버렸다. 이후로 유사한 FPS 장르에서 PUBG라는 강적이 등장했고, 다시 LOL에게 고지를 탈환당했지만 여전히 주류 게임으로서 대중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 게임은 게이머라면 다들 한번쯤은 해봤을, 하지만 계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임이다. 그러한 이 게임의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때 지금의 솔져 논란은 다소 과장된 감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논란에 대해 떠드는 사람중에, 실제 오버워치를 꾸준히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얼마나 될까?
이것은 이번 솔져 이슈가 대중에게 피로감을 주는 근본 원인일 수 있다. 블리자드는 지난 3년간 오버워치 프랜차이즈에 두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꾸준히 새로운 캐릭을 발매하고 스킨을 발매하고, 스토리 영상과 만화, 설정들을 꾸준히 공개 해 왔다. 이 중 한국인 캐릭터 송하나(D.Va)의 설정영상과 새로운 맵 '부산'의 공개는 국내에도 꽤나 이슈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솔져가 게이었다는 사실은, 이처럼 꾸준히 공개되는 설정중 하나의 전개에 불과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공개된 설정은 '별거 아닌' 일이고, 지나가듯이 '... 그리고 얘는 게이였는데' 라고 언급하는데에 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게이머들 커뮤니티의 반응은 결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오버워치를 초창기에 즐기다가 지금은 손 놓은 상황에서 오버워치는 한동안 그들에게 잊혀진 게임이었다. 그들에게 오버워치를 환기시켜주는 것은 앞서 말한 송하나의 공식설정, 혹은 이번의 솔져 사건과 같은 '굵직하게 언급되고 화자되는 몇가지 사건'들 뿐이다. 그런 대다수의 냉담자들에게 본 사건은 '지나가듯 흘러가는 전개'로 보이기 힘들 것이다.
다시말해 국내의 게이머들에게 오버워치는 다들 한번씩은 해본 게임이다. 그런 그들이 게임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게이머의 내적인 판단이 아니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른 한 편 그들 중 오버워치를 꾸준히 하는 게이머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고, 그런 측면에서 이번 논란은 과다하게 포장되고 거품이 낀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내부적 입장에서도 불만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진짜 중요한 건 안 풀고 PC 대세에 편승하려 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불만은 오버워치를 꾸준히 즐기는 팬들의 입장에서 발화되기 충분한 주장이다. 예컨데 그들은 오버워치를 꾸준히 즐기면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개된 것은 그 '무언가'가 아닌 기계적으로 다양성을 넣으려는 듯 무언가였다는 뜻이다.
나는 오버워치를 꾸준히 즐기는 팬은 아니므로 이에 대한 주장은 골수 팬들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그러나 '과거의 게이머'로써 느낀 불만 한가지 정도는 개인의 경험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버워치의 스토리텔링은 너무 불친절하다. 분명 세계관은 다양한 요소를 잘 집어넣어 잘 만들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번 언급되는 옴닉사태는 대체 무엇이고, 탈론은 대체 뭐고, 오버워치는 그래서 뭐하는 단체였는가? 그리고 오버워치는 이후에 버림받아서 숨어 산다고 했는데 대체 왜 버림받은 것인지? 기계는 왜 인간들과 싸우는것 같으면서 어떤 설정에서는 오히려 인간에게 박해받고 있는지. 왜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단체들이 '오버워치'라는 게임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싸우고 있는지. 바깥 설정을 조금 읽어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적어둔 것을 미리 사과드리는 바이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전개가 마냥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어쨌거나 오버워치라는 게임에서 스토리라는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게임플레이와 스토리를 분리하는 것은 오버워치만의 특성도 아니다. LOL의 경우 또한 설정들을 각 캐릭터들의 과거, 캐릭터들 간의 인간관계, 그리고 이들이 한데 묶여서 전투를 벌이는 '소환사의 협곡'과 '소환사'라는 설정만 불친절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LOL은 설정을 자주 뒤엎기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오버워치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와 유사한 장르들간에 공유되는 공통점이자, 게임의 특징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에 열내는 우리 중 상당수는 오버워치의 '팬'이라고 자처하기는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을 지도 모른다. 솔져76이 게이인 설정이 정말 뜬금포로 튀어나온 것인지, 혹은 일반적인 스토리의 전개에서 지나가는 사족에 불과했는지 판단하기에는 조금 섣부른게 아닐까?
이런 평가를 내리기 전에 조심스럽게, 오래 전부터 꾸준히 오버워치를 즐기고 그 스토리와 설정 공개를 챙겨보던 골수 팬들의 평가를 들어보는건 어떨까? 어쨌거나 무언가를 비판할 '자격'이 부여된다고 하면, 1순위는 바로 그들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