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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Jul 26. 2020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

날마다 나를 위한 성찰의 밤

사람들은 운명을 믿을까?

타고난 저마다의 각자의 운명이 정말 존재할까?

그렇다면 너무 불공평하다.

혹시라도 자신의 운명을 눈치챈 사람들은 기운이 빠져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신년에 보는 운수나 점을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기 나름인데 정해진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 왈가 왈가 하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지 등

나는 늘 나와 친구들 그리고 다른 집을 비교하면서 왜? 왜? 를 생각하곤 했다.

나의 이상은 높고 화려했고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미래를 생각하고 이상을 꿈꾸는 소녀였다.

내가 살고 싶은 베란다가 멋들어진 이층 집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상을 꿈꾸고

정원이 있고 침대가 있는  종이인형을 만들어서 서랍 속에 숨기고 매일매일 들여다보았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꿈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해준 말이 삶의 가치관이 되기도 했다.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딱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독서, 둘째는, 기도, 셋째는 봉사하는 마음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공감이 느껴졌다.

그래..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란 없는 거야. 늘 공부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내적으로 풍성한 교양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듯이 염원하고 갈망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어.

그러다 보면 행복한 삶이 찾아오는 거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 연민을 갖게 되면 스스로 베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좋은 평판과 인정은 찾아오게 되고 행복한 인생이 이어지겠지.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의 내 삶이 되고 운명이 되는 거겠지.

나의 결론은 이거였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 세 가지는 꼭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단 한 번도 만족해한 적이 없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는 그냥 발판일 뿐 다가올 미래를 향해 저기 저곳을 향해 더 더 더 노력해야 해..

더더더 앞으로 나아가야 해.. 더 더 더!

이러한 나의 신념과 가치관이 긍정적인 면에서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0대 늦은 나이에 들어간 직장에서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기회를 잡기 위해 적극적인 어필도 서슴지 않았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러한 삶은 많은 기회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 때는 이러한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내가 이겨내야 할 나의 과제로 생각했다.

어느 때는 짜릿한 희열마저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데 일을 하게 되면 당연히 스트레스는 존재하게 되고 완벽주의를 꿈꾸는 나에게 그 스트레스는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 몸에 무리가 되고 건강에 위협을 주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듯한 수술실 천장의 조명을 보면서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과 나를 떨어뜨려서 생각한 적이 없는데 나는 건강이라는 복병을 만나서 

나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 발발을 빼고 들여다보니 객관적으로 나를 생각하고 나를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려고 발버둥 쳤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뭔가를 이루려고 했을까?

나는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몸의 회복을 위해 회사와 일을 떠나서 운동을 조금씩 했다.

동네 한 바퀴.. 동네 두 바퀴를 늘려 나가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사는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작은 골목골목이 이렇게 예쁜 곳이 많은 줄 몰랐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 산책로가 있는 산이 이렇게 푸르른 적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

놀라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일 줄은 몰랐다.

마치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나는 좀 더 나를 알고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찾아다니면서 들었다.

어떤 강연자는 삶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고 어떤 강연자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꿈을 찾아보라고 했다.

또 어떤 교수님은 삶의 목표와 목적 비전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회사에서 허락한 건강을 회복할 기간 3달 동안 나는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기대하고 나답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거였는데

결국 나의 건강 하나를 잃게 되니 나는 다른 것들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해줘야 하는데 새벽까지 일을 한 나는 나를 위한다면서 나를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충분한 마음의 쉼을 줘야 했는데 나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에 나를 힘들게 했던 적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나의 어깨와 팔을 쓰다듬으면서 처음으로 말해주었다.

그동안 힘들었지..? 너를 돌보지 않아서 미안해.. 앞으로는 자주 너를 돌봐주고 힘들지 않게 해 줄게..

그리고 자주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에게 질문하고 토닥토닥해주면서 나와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도

"참 잘했어. 너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많지 않아. 이만하면 정말 최고야"라는

엄지 척을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해주었다.

과거에 살았던 나도 열심히 살았고 현재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나의 모습도 참 다행이고

앞으로가 기대될 만큼 슬기롭게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기대되고 또 설렌다.

과거의 나도 인정하고 현재의 나도 인정하는 것이 가장 나답게 해 주는 것 들이다.

부족했던 나의 모습도 나이고 결핍 때문에 안간힘 썼던 나도 나이다.

그런 나도 나임을 인정하고 끌어안아줄 때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들이다.


지금도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트레스가 닥쳐와도 스트레스가 많이 힘든지 나에게 물어보면 훨씬 힘들지가 않다.

쉼이 필요한지 나에게 한번 물어봐주면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에 앞서서 나와 먼저 소통하는 방법은

가장 나를 나답게 나답게 해 주는 것 들이다.

나와의 대화를 통한 나와의 소통은 나를 가장 나답게 성장시키는 것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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