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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16. 2017

모정의 눈물

막내야  우리막내야..

몇월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이었는지 오후였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갑자기 강원도에 살고 계시던 막내 작은아버지가 그만 파도에 타고있던 배와 함께 실종되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할머니는 계속 안절부절 하시고 집안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무건운 공기에 숨이 멎을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때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쯤으로 기억하는데 막내 작은 아버지를 본것은 1년전쯤 어느 명절날 이었다.

유난이도 키도 크고 얼굴도 하얗고 인상이 참 좋은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는 한가한 날에는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맛있게 연기를내뿜으며 막내 작은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뿌듯한 얼굴로 한참을 이야기 하던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어린 나였지만 할머니가 막내 작은아버지를 참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의 비보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할머니께 말씀 드린 순간 할머니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셨다. 잠시후 방안에서는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막내 어떻해 아이고.. 아이고" 하는 통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들어가서 위로해 드리고 했지만 통곡소리와 마치 아이가 되버린것처럼 온몸을 몸부림 치며

할머니는 그렇게 몇시간을  우리 막내야를 외치며 울고 또 우셨다.

지금까지 그렇게 씩씩하고 여장부다운 , 나무처럼 강한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때 처음 내 마음에서 할머니에 대한 연민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슬픈 감정에 조용히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지금 나도 두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자식을 잃은 마음이 오죽 했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는 짐작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할머니의 두손을 꼭 잡아들이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할머니의 슬픔이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다시 예전처럼 힘든 밭일을 나가시고  일당으로 받은 돈은 손자손녀를 위해 여전히 쌈지돈을 열어주시고 곰방대에 담배잎을 말아서 하얀 연기를 하늘높이 날려 보내시곤 하셨다.  할머니의 곰방대는 할머니가 기쁠떄나 슬플때나 언제나 함께 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기쁠때는 콧노래와 함께였고 슬플때는 뻐끔뻐끔 담배피는 소 소리와 먼산을 응시하며 담배연기를 높히 아주 높이 뿜어 보냈다.

어릴적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기떄문에 할머니와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던것 같다. 나는 시험을 잘봐도 할머니에게 먼저 자랑을 하게 되고 학용품이 필요하면 할머니에게 말씀 드려 용돈을 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따뜻한 고구마나 빵을 직접 만들어서 갖다드리는 분도 할머니였다. 경우가 바르고 강직했던 할머니는 언제나 곧고 경우가 바른 사람으로 주위에서도 통했다. 추운겨울날 발시렵지 말라고 운동화를 연탄불 위에 올려놓았다가 아침에 나갈때 신고 갈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는 할머니는 오로지 자식걱정 손주손녀 걱정에

할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구리빛 이었고 언제나 옷은 무색의 일하기 편한 면으로 된 한복같은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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