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분노였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오히려 쉽게 정리되지 않는 불편함이었다. 이 드라마는 분명 피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한 작품이다. 상처를 말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하고, 피해 사실보다 피해자의 태도와 과거를 먼저 심문하는 사회를 향해 분명한 방향으로 분노를 던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법정극이라기보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침묵하도록 강요받는지를 묻는 드라마처럼 보인다. 여성 인물들은 무너진 채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추적하고 맞서고 연대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피해 서사를 수동성에 가두지 않으려는 의욕을 분명히 드러낸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처음에는 이 드라마가 꽤 의미 있는 방식으로 상처와 정의를 다루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가 과연 충분히 입체적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불편했던 것은 남성과 여성이 극 안에서 배치되는 방식이었다. 남성 인물들은 지나치게 자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비겁하거나, 침묵으로 공모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여성 인물들은 상처를 입었거나 그 상처를 이해하고 대변하는 위치에 놓인다. 물론 성범죄 서사에서 권력의 비대칭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방향성이 어느 정도 의도되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이 드라마는 구조적 폭력을 말하려는 듯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구조를 세밀하게 보여주기보다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를 욕망과 가해의 상징처럼 밀어 넣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여성은 능동적으로 보이면서도 결국 상처와 피해의 경험을 통해 정당성을 얻는 경우가 많아서, 끝내 여성 역시 피해와 회복의 틀 안에서 설명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보다 보면 이 작품이 비판하고 싶은 것이 권력의 문화와 시스템인지, 아니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너무 빠르게 서로 다른 도덕적 위치에 배치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작가는 이런 불편함을 느낄 시청자들을 의식했는지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둔 것처럼 보이는데, 내게는 그 장치들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대표적으로 커넥트의 피해자 중 남성 피해자가 등장하고, 또 유독 그 남성 피해자만 증언대에 서 있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 장면은 서사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결과라기보다, 이 작품이 남성을 오직 가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뒤늦게 꺼내 든 카드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놀라기보다 먼저 “갑자기?”라는 생각을 했고, 이어서 그 의도가 너무 선명하게 읽혀서 오히려 더 불편했다. 정말로 성폭력의 문제를 더 깊고 넓게 다루고 싶었다면, 남성 피해자의 존재는 훨씬 이른 시점부터 더 자연스럽고 더 밀도 있게 서사 안에 스며들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인물이 하나의 예외적 장치가 아니라, 이 세계가 가진 복잡성을 확장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 장면은 충분한 축적 끝에 도착한 결과라기보다, 예상 가능한 비판을 비껴가기 위해 마련된 안전장치처럼 보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균형감이 오히려 더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이 드라마가 자신의 한계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정면으로 더 깊게 파고들기보다 형식적인 보완으로 봉합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문제의식 자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아너: 그녀들의 법정은 피해자의 말이 얼마나 자주 의심받고, 고통이 얼마나 쉽게 거래되며, 법과 제도조차 때때로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끈질기게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분노는 분명 가볍지 않고, 어떤 장면들에서는 그 절박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다만 그 진심이 클수록 더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은 옳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종종 너무 단정적이고 도식적이다. 남성은 욕망과 공모의 얼굴로, 여성은 피해와 연대의 얼굴로 빠르게 정리되고, 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더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의 결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멈칫하게 만든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 윤리적 태도만으로 모든 재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아너: 그녀들의 법정은 필요한 문제의식을 가진 드라마이고, 누군가의 침묵을 깨고 말하게 하려는 강한 의지를 품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의지가 강한 만큼 사람들을 상징으로 밀어 넣는 위험도 함께 안고 있고, 특히 그 한계를 보완하려고 넣은 장치들마저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작동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그 편향성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단순히 좋았다거나 불편했다는 말만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여러 번 공감했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고, 또 여러 번 멈칫했다. 바로 그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이 작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다만 오래 남는다는 사실이 곧 완성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너: 그녀들의 법정은 분명 의미 있는 드라마지만, 동시에 자신이 던지는 메시지를 너무 분명하게 밀어붙인 나머지 인간의 복잡함과 서사의 자연스러움을 충분히 남겨두지 못한 작품, 그래서 생각할 거리는 많지만 마냥 깊고 섬세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