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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환 Dec 22. 2021

[파우스트] 10. 유전자는 말이 없다

<가타카> - 앤드류 니콜 영화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
인간은 노력하는 동안엔 방황하는 법이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철학가 요한 볼프강  괴테의 대표 희곡작 <파우스트 Faust> 인간을 내세우고, 인간을 읽고, 인간의 구원을 소명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인간성에 대해 깊게 탐구한 괴테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파우스트> 작품에서 내비친 결론은 단연 ‘노력하는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성만을 주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반대해 절대자 신은 인간이 구원될  있는 존재임을 굳게 설파한다. 인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로부터 온갖 욕망의 대상을 섬길 수단과 지위를 갖지만,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넘어서서 자연, 정령의 것까지 모든 근원적 대상을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인물로 묘사된다. 인간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내기에서 결국 패배하게 되지만, 그를 믿는 신으로부터 구원되며 인간적 노력에 대한 응당한 대가와 지혜를 찾게 되는 것이 <파우스트> 펼쳐내는 준엄한 서사다. 인간의 노력은 노력하는 이유와 목표뿐 아니라  자체로 숭고한 가치가 되기 때문에  과정에서 발견되는 실수와 방황은 당연한 모험이라는 . 괴테는 인간적인 삶에 대해 그렇게 소원하였다고 한다.

파우스트로 대표되는 인간의 모습은 가히 노력의 연속이다.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서면서 고민과 정신적 성숙을 거듭하는 것이 우리가 어렵지 않게 동의할  있는 자아의  일부분이다. 살아오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과 방황도 사실은 노력의 산물이자,  다른 노력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한 고민을 즐길 것인지, 악담을 퍼부으며 스트레스를 받아갈 것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지점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종종 다른 이들이 선택하고 노력하는 과정,  모험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물이 삶을 고양하고  나은 지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영화적 또는 문학적 재미와 대리만족감을 선사한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들 속에서도 명석한 결과를 뽑아내는 이야기들엔 검소한 유혹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기나긴 여정 끝에 돌아오는 안도감과 정착감, 통쾌함과 절정  매일 접하기 어려운 감정들에 대한 갈망이 작품과 나를 이어주게 한다. 물론  결과물을 얻기까지의 극도의 불안감 또한 서스펜스의 중심을 잡아준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 도전과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을  작품은 고매한 감상을 남긴다.  자신에게도 응어리진 고민들을 깨우고 삶을 정진시키려는, 조용한 몸부림이 담겨 있기 때문일 테고,  방황마저도 괜찮은 이야기의 수순일 뿐이라는  다시금 알게 되기 때문일 테다. 방황하고 노력하는 인간 파우스트의 여정을 재차 밟아보는 작품들을 고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파우스트] 감상문 리스트
# <가타카 GATTACA> - 앤드류 니콜 영화
# <연금술사 The Alchemist> - 파울루 코엘료 소설
#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 프랭크 다라본트 영화



감독 | 앤드류 니콜

출연 | 에단 호크, 주 드로, 우마 서먼

제작 연도 | 1997 년


잠시 벼룩 한 마리를 보자.

18cm 높이까지 펄쩍 뛸 수 있다는 벼룩 한 마리를 5cm 높이의 작은 유리병에 넣어두고 뚜껑으로 출입구를 막아 버린다. 몇 시간이 지나서 뚜껑을 열어 놓아 보면, 벼룩은 유리병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미 뚜껑 높이까지만 몸의 능력을 길들여 버렸기 때문이다. 매우 작은 곤충이라 대충 웃어넘겨 버리고 말 일이겠지만, 이 유명한 실험은 단순한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뚜껑을 유전적 통제 시스템이라고 가정한다면 영화 <가타카 GATTACA>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은 그저 유전학에 자신의 가치를 매몰시켜 버린 형상으로 비친다. 우월하다고 판단되는 유전자 정보만을 선택해 태아들을 배양시키는 가까운 미래, 인류가 내놓는 성적은 더욱더 높아지고 유전적 선택을 받지 못한 열성 인자들은 점점 더 철저히 배척된다. 유전학적인 (그리고 매우 인위적인) 성공이 영화의 기본 모티브를 이루는데, 그런 유전자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자연적인 조건으로 태어난 주인공 빈센트 프리맨에겐 스스로가 ‘실패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더욱 각인해 줄 뿐이다. 완벽한 우성 인자를 갖고 태어난 ‘적격자’들과 그렇지 못한 ‘부적격자’의 구분적 개념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통제 시스템 내에서 갖춰짐을 영화 초반부에서는 설명한다.


그러나, 시스템에 길들여진 탓일 뿐, 부적격자 빈센트는 뚜껑으로 덮이기 이전의 자신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적격자들보다 더욱 가능한 지점을 몰래 찾아 나선다. 영화는 끊임없이 긴장감과 기대감 사이를 오고 감을 반복한다. 우주탐사 전문기업 가타카(GATTACA)는 훈련된 적격자들을 정기적으로 우주 비행 탐사에 보낸다. 빈센트는 우주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 적격자들만 취업하는 곳이니 빈센트에겐 신분과 유전정보 위조는 거의 필수다. 신분 위조 브로커를 통해 적격자 신분인 제롬 유진을 만나 그의 혈액과 피부 껍질 등을 채취받으며 빈센트는 그의 행세를 대신하게 된다. 빈센트의 가짜 신분이 탄로 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과, 조금씩 우주로켓 탑승 날짜가 다가오면서 그의 상승을 바라게 되는 기묘한 교차감이 관객에게 선사되는 중요한 서스펜스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적격자’와 ‘부적격자’ 중 누구의 몫이 세상에 필요하게 될지를 조금씩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절제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는 왜 날아오르려 할까.

빈센트에겐 사실 우성 인자만을 가지고 태어난 남동생 안톤이 있다. 빈센트의 이름이 될 뻔했던 ‘안톤’은 동생의 것이 되었고 형보다 키가 크고 형보다 월등히 좋은 체력 조건을 자랑한다. 빈센트와 안톤이 벌이는 수영 내기 장면을 통해 빈센트가 지고 살았던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이기고자 하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랬다. 빈센트의 시작은 우성 인자와의 비교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형제 간 비교를 당했으니, 그의 열등감 내지 떨어지는 자존감은 뒤바뀌어 강력한 동인이 되고야 만다. 더 이상 자기보다 위에 올라설 사람이 없을, 우주라는 공간에 가야 할 개인적인 사연은 유전학적으로 부족했던 태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빈센트는 날아오르기도 하지만, 날아올라 주기도 한다. 제롬 유진은 세계 은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훌륭한 수영선수였으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는 그를 바깥세상으로부터 거둬들이고 만다. 제롬의 가슴도 빈센트만큼이나 열정적이고, 그 또한 우주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다분하다. 빈센트는 날아오르고자 하는 제롬의 꿈을 자신의 것 위에 같이 얹혀 놓는다.


사실 그들의 신분은 조작된 거짓이며, 사회 시스템적으로도 신분 위조는 가벼운 범법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두 인물들을 두고 잘못을 저지른다는 인상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성공이라고 점쳐지는 유전학의 발달은 오히려 인간적 성숙을 방해해 버리고 마는 손쉬운 선택 수단이 되었으며, 부적격자들에 대한 차별 또한 올바른 역사의 이음줄을 갈라놓는 인식적 오류로 등장한다. 두 주인공들에겐 그것은 악법이며, 기괴한 인위적 잣대로 비친다. 그들의 시선이 곧 관객의 시선으로 이어지며 부당한 통제 시스템에 대한 반항감이 두 주인공과 함께 일게 되는 것은 <가타카>가 의도하는 연출이다. 그들이 날아가고자 하는 당위성을 알게 된 관객들에게는 ‘부적격’이라는 냉정한 구분이 더 이상 초라하게 들리지 않는다.




촘촘한 신분 위조 행위는 빈센트에겐 구명 밧줄과도 다름없다.

그가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이 완성된 치밀함이다. 가타카 사옥 출입 때마다 요구되는 혈액 채취를 위해 엄지손가락 피부 겉면에 소량의 제롬의 피를 숨겨 놓아 두거나, 제롬의 일정한 심장 박동 움직임을 복사해 자신이 운동할 때 나타나는 데이터로 몰래 끼워 넣는다. 적격자들보다 체력이 부족한 빈센트는 매 순간 힘들지 않은 척을 보여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 천천히 호흡을 하다가 라커룸에 돌아와서는 숨겨두었던 가쁜 숨을 처절하게 내쉬는 식이다.


가타카 내부 훈련 동료인 아이린과 빈센트 사이의 에피소드들은 영화 속 메시지들을 대변한다. 아이린은 적격자 신분이지만 빈센트처럼 심장이 약한 탓에 체력적으로 큰 자신감을 보이지 못한다. 아이린은 빈센트의 신분 위조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들은 부조리한 시스템의 암막에 갇힌 희생자들로서 같았다. 아이린은 점점 빈센트를 의심하면서도, 범죄자로서가 아닌 주체적인 인격체로 그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가타카가 선호하는 완벽한 조건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우주로의 여행이 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단순히 높은 곳을 지향하기보다, 편견이 사라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증명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것이다.


Only I don’t have 20 or 30 years left.
Mine is already 10,000 beats overdue.
난 고작 2~30년밖에 못 산댔어요. 하지만 벌써 지났어요.
-
It’s not possible.
불가능해요.
-
You are the authority on what is not possible, aren’t you, Irene?
가능한지 아닌지의 운명을 정하는 건 자신의 몫이잖아요?


처음 남들 눈을 피해 몰래 시작했던 빈센트의 범죄는 그렇게 조금씩 동의를 얻어 간다. 제롬, 아이린, 심지어 가타카 직원들의 신분을 확인해 주는 전문의까지. 우주로 도약하는 빈센트의 부적격자 지위를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가타카처럼 사회적 시스템을 거느리는 공권력 기관, 경찰만이 기존의 관습과 인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경찰이 된 동생 안톤과 빈센트의 대립각이 마지막 수영 내기를 통해 극에 달하기도 하는데, 결국 부적격자 몸의 빈센트가 동생을 꺾으면서 영화적 메시지는 한층 더 굵어진다. 영혼을 아름답게 세워줄 수 있는 건, 우성 인자가 아닌 끝없는 탐구력과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빈센트는 증명하고야 만다.


How are you doing this, Vincent?
How have you done any of this?
날 어떻게 이긴 거야, 빈센트?
이거 다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냐고?

You wanna know how I did it?
This is how I did it, Anton. 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알고 싶어?
있잖아, 안톤, 난 다시 돌아갈 힘을 남겨 두지 않았어.




가타카는 부적격자를 우주로 보낸다.

그리고 부적격자와 물리적으로 가장 대척점에 있던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는 부적격자가 올라탄 우주선이 떠나는 모습을 목격한 후 자신의 육체와 흔적을 불태운다. 자신의 이름으로 올라탄 부적격자에게 제 꿈을 맡겨 놓았으니, 정확히 그의 꿈은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껏 그의 꿈이 꼭 우주선에 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줄곧 자신의 영혼이 아름다워지기만을 바랬을 뿐이라는 것을.


적격자를 우주로 보내고 부적격자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우성학 중심의 가타카 시스템은 영혼의 본질을 읽어내지 못했다. 누가 적격 판정을 받아야 하고, 누가 우주선을 타면 안 되는지에 대한 구분선을 제멋대로 그어 놓았다. 하지만 우주로 올라가야 할 적격자는 땅에서 분신되고, 땅에 남겨져야 할 부적격자는 그 누구보다 높은 공간으로 올라섰다. 점차 구분선은 의미가 옅어질 것이고, 우주에 다다르는 이들은 더욱 다채로워질 것임을 관객들은 이제 느낄 수 있다. 적격 판정을 받는 이들이 아닌 가타카를 중심으로 한 인위적 잣대에서 짙은 흠결을 찾게 되고, 세상의 몫을 바깥이 아닌 한 인간의 가능성에 맡겨두기로 할 것이다.


수많은 별들이 우주 공간 속에서 빛이 난다. 우주는 마치 내 몸안의 공간처럼 질서 있고 고요하다. 어쩐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는 빈센트의 독백이 이어진다. 오히려 나와 내 피땀과 노력들이 염원했던 건 오히려 내 안의 평화였을지도 모른다는 듯이. 우주 공간의 별들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내 영혼과, 내 유전자가 보인다. 유전자는 내 영혼이 밝기만을 바라며 조용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을 뿐, 그 아무에게도 구분선을 그어 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의 가능성으로 우리의 시선이 회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빈센트가 염원했던 우주처럼, 유전자는 말이 없었다.


Of course, they say every atom in our bodies was once part of a star.
Maybe I’m not leaving. Maybe I’m going home.
몸속의 모든 원소가 우주의 일부라고들 한다.
어쩌면 떠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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