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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Jun 28. 2021

'루카' & '아야와 마녀'

지브리를 동경한 픽사, 픽사를 동경한 지브리...


역사와 전통은 매우 중요하죠. 특히 그것이 작품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디즈니... 그중에서도 픽사가 있고 일본에는 지브리가 있지요.

묘하게도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고 서로 양측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오래간만에 비슷한 느낌의 두 영화를 가져와 봤습니다.

애니메이션 '루카'(Luca/2021)'아야와 마녀'(Earwig and the Witch, アーヤと魔女/2020)입니다.





ⓒDisney, Pixar
ⓒDisney, Pixar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 마을에는 바다 괴물이 출현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어부들은 그곳에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코지를 당할까 봐 주저하죠. 그러나 의외로 이 바닷속의 또 다른 마을은 반대로 인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살고 있지요. 여기 사는 꼬마 바다 괴물 루카는 양 떼를 모는 것처럼 물고기를 몰면서 사는 평범한 소년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바다 괴물에 놀라 인간들이 떨어뜨린 물건을 발견하죠. 또 다른 물건들을 발견해 건지려는 순간 또 다른 바다 괴물이 물건을 낚아챕니다. 그의 이름은 알베르토. 인간세상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를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육지로 올라와 인간으로 변하는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면 큰일이 나지요.

알베르토에게는 꿈이 있어요. 인간들이 타는 소형 오토바이인 베스파를 가지는 거예요. 그에게 곧 베스파는 '자유'였기 때문이죠. 그러던 와중 루카가 육지로 올라온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고 루카를 삼촌이 맡기로 결정을 냅니다. 무작정 가출을 한 루카는 알베르토와 인간 마을로 올라옵니다.

모든 게 신기해요. 젤라또를 먹는 아이들과 베스파를 비롯해 다양한 탈 것들이 있고요. 그러던 와중에 줄리아라는 아이를 만나요. 그는 마을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매년 왕재수 에르콜레에게 패배하고 말지요. 너무 강력한 우승후보인데 하는 짓은 입맛 떨어지는 짓만 골라하거든요. 어찌하다 보니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는 한 팀이 되기로 해요.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마음속의 부르노를 쫓아내야 돼요. 과연 이들은 우승을 할 수 있을까요? 실렌치오, 브루노! (Silenzio, Bruno!)








ⓒNHK, NEP, Studio Ghibli
ⓒNHK, NEP, Studio Ghibli


영국의 어느 도로... 한 여인이 오토바이를 타며 쫓기고 있습니다. 겨우 따돌린 그는 공동묘지 옆에 위치한 성 모아발트 보육원에 갖난 아이를 맡겨놓습니다. 남긴 쪽지에는 열두 명의 마녀에게 쫓기고 있어 따돌리고 나면 돌아오겠다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요. 아이의 이름은 조종자란 뜻을 가진 아야츠루(あやつる). 그냥 '아야'란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하죠. 아야에게는 절친이자 시종 노릇을 하는(?) 커스타드가 그를 지켜주고 있지요.

공동묘지 귀신 소동으로 한바탕 난리를 친 상황이 끝나고 아이를 입양하러 온 이들로 보육원이 북적댑니다. 그리고 아야에게도 사람들이 찾아오죠.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여인과 꺽다리 남성 한 명은 아야를 입양하기로 결정합니다. 어느 가정집에 도착했는데 도망가기 좋겠다고 말하자마자 대문 문이 잠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현관문도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아참, 말씀 안 드렸죠. 아야를 데려간 이들은 마녀 벨라 야가와 악마 맨드레이크입니다. 아야는 그냥 시종 잡부 역할로 온 것이고 벨라 야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맨드레이크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눈에서 레이저  그 이상이 나올꺼고 분홍 지렁이 날벼락을 맞을 거예요.

아야는 이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민을 하는데요. 이 이상한 집을 둘러보던 와중 낡은 라디오를 발견합니다. 마침 자신에게 유산처럼 남겨진 정체불명의 테이프가 있었고 거기 나오는 음악에 빠집니다. 아야에게 유일한 자신만의 공간은 자신의 방과 화장실이 전부. 말하는 고양이 사역마 토마스와 함께 벨라를 골탕 먹이기로 마음먹습니다. Don't disturb me... 날 방해하지 마!






ⓒDisney, Pixar
ⓒDisney, Pixar


애니메이션 '루카'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리비에라 지역의 친퀘 테레(Cinque Terre)는 `다섯 개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해안 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의 해변 마을이에요. 실제 자동차가 들어설 수 없는 마을인데 이 영화의 감독인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경험이 일부 녹아든 작품이에요. 실제 절친인 이름도 알베르토였기에 바다 괴물 물고기의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거라고 봅니다.

엔리코 카사로사는 어렸을 적 많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는데 디즈니 단편인 '라 루나'로 자신을 알렸죠. 묘하게도 바다 괴물과 판타지를 엮었다는 점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고 나서 기쁜 마음을 그림으로 스케치해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지요. 지브리 영화의 영향도 있지만 이탈리아 영화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장면도 보이고 곧곧에 영화 포스터가 숨어있는 모습도 볼 수 있죠. 가령 페데리코 펠리니의 1954년 영화 '길'이라던가 오드리 헵번 주연의 1954년작 '로마의 휴일' 같은 경우가 그렇죠.




ⓒDisney, Pixar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소형 원동기인 베스파(Vespa)입니다.

이탈리아의 국민 스쿠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스파는 1946년에 처음 선보이기 시작했는데요, 생김새와 배기음 소리가 말벌 소리 같아서 생긴 별명이 이름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과거 조립공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판매량은 저조했다는 게 아이러니죠. 앞에 이야기한 '로마의 휴일'에도 등장한 게 바로 이 베스파입니다.




ⓒDisney, Pixar


'루카'는 늘 디즈니(혹은 픽사)가 하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다 괴물을 이방인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는 것인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풍자가 깔려있는 것이죠. 인간은 이 인어를 괴물로 생각했고 인어들은 반대로 인간을 괴물로 생각하게 됩니다. 가까이해서는 안될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죠. 마주해보지도 않고 편견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인간들은 바다 괴물에게 붙은 현상금을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루카와 알베르토 앞에서 시큰둥한 얼굴을 했던 노인들도 알고 보면 바다 괴물로 인간과 함께 했음을 보여주죠. 편견은 바로 가까이 있지만 결국 편견을 이겨내는 방식 또한 가까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루카는 줄리아와 함께 또 세상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말리던 루카의 부모님도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요.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NHK, NEP, Studio Ghibli
ⓒNHK, NEP, Studio Ghibli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는...

'아야와 마녀'는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그렇고 지브리가 사랑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뜬금없는 결말에 관객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데에는 다이애나 원 존스는 당초 여러 편으로 이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했으나 완결 짓지 못하고 2011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야와 마녀'를 만든 미아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째 아들로 건축가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변신한 좀 특이한 경우죠. 첫 작인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이 실패하여 심기일전으로 만든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이번에 만든 작품은 일본 공영 방송 NHK과 함께한 TV영화로 2020년 연말에 첫선을 보였으며 정작 극장 개봉은 자국인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봉이 되었지요. 일본은 2021년 8월에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브리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 처음으로 3D로 만든 작품이란 점이 인상적이죠. 의외로 지브리도 2D 클래식 애니메이션에 한계를 느껴 새로움을 찾던 와중에 픽사를 비롯한 작품들을 참고하고 이번 장편을 준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NHK, NEP, Studio Ghibli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음식의 대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에도 3D로 구현된 다양한 음식이 나오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야가 좋아하는 셰퍼드 파이(Shepherd's pie)입니다.

흔히 파이라고 생각하면 애플파이처럼 달콤한 것들을 생각하시기 마련이지만 이 것은 양고기를 잘게 썬 야채 등과 함께 볶아서 익힌 다음, 소스에 졸여 오븐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간을 맞춘 매쉬드 포테이토를 덮어 오븐에서 익혀 마무리하는 것으로 생각보다 꽤 복잡한 조리 과정이 있었던 것이죠. 참고로 양고기 대신 다진 소고기를 넣을 경우는 '코티지 파이'라고 합니다. 아야와 맨드레이크가 홀딱 빠질 수밖에 없겠죠.





ⓒNHK, NEP, Studio Ghibli


'아야와 마녀' 역시 편견을 전복시킨다는 점에서 '루카'와 같은 듯 다릅니다.

아야는 마녀 벨라 야가와 악마 맨드레이크에게 입양 아닌 입양으로 온 상태인데 부려먹는 정도로 보면 신데렐라, 콩쥐팥쥐 계모 수준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게 이른바 (일본 영화이니 당연하게 나올 소리지만) '츤데레'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봅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신 분이라면 아야는 벨라와 맨드레이크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또 다른 마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는 끝까지 아야의 엄마가 '이어위그'의 보컬이었다는 사실을 아야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악마나 마녀로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고 맨드레이크는 훗날 소설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소설이 평단의 평가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분노하면서 자책하는 장면은 괴기스럽지만 웃음을 주면서 결국 인간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브리가 생각하는 판타지의 노선과 다이애나 윈 존스의 노선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픽사와 지브리는 새로운 갈림길에 있습니다. 전통성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소재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민 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픽사가 픽사만의 스타일을 버리는 것이 불만일 테고 누군가는 지브리가 어색한 3D 스타일을 새롭게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각자의 도전이 있기에 우리는 이 도전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판은 그다음일 것이라 봅니다.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지브리는 픽사가, 픽사는 지브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들의 속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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