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나와 마주한 어느 봄날
스물한 살, 대학로의 작은 극장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 시절 대학로는 공연으로 북적였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들이었고, 그들을 위해 극장 앞에 포스터를 붙이고, 리플릿을 나눠주는 일은 필수였다.
작은 극장이었기에, 누구 하나 할 일만 하지는 않았다. 티켓을 끊고, 무대를 정리하고, 관객을 맞이하는 일까지 하루는 빠듯했고, 주말도 반납해야 했다. 월요일 하루만 쉴 수 있었고, 그나마도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퇴근은 늘 늦었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공연 전에, 오후 다섯 시쯤 서둘러 먹었다. 8시 공연이 끝나면 동료들과 낙산공원에 오르곤 했다.
그때 우리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쉽게 지쳤고, 지금은 안 되는 일이지만 낙산공원 성곽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최근에 다시 낙산공원에 올랐다. 공원은 여전히 시원하고 좋았다. 꽃나무가 막 피기 시작했고, 공기는 봄처럼 부드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불안하고 고단하다. 마치 그 시절의 내가 아직도 그 언덕 위 바람을 견디며, 서울과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고단한 시간을 견디는 마음은,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