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하울의 성에 올라

노인의 얼굴로 소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by 쏭저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그의 영화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벼랑 위의 포뇨. 어릴 적부터 즐겨 봤던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좋았다. 장면이 떠오를 만큼 귀에 선율이 깊게 남아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그의 영화들이 몇 년 전부터 다시 공개되면서 접근은 더 쉬워졌다. 아직 다큐멘터리는 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봤다. 주말 밤, 조용한 거실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래전에 잊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소피는 작은 모자 가게에서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소녀다. 우연히 마법사 하울을 만나고, 그를 질투한 마녀의 저주로 노인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인이 된 이후 오히려 삶에 주도권을 갖는다. 성을 찾아 산을 오르고, 집안일을 스스로 만들어 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왕에게 나아간다. 그녀는 더 이상 주변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때때로 다시 젊어진다. 자고 일어났을 때, 사랑을 느낄 때, 어떤 순간에는 얼굴이 다시 소녀가 된다. 저주는 단순히 겉모습을 바꾸는 마법이 아니다.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작동한다. 소피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본래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하울 역시 그런 소피를 보며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언제나 같은 메시지를 건넨다. 전쟁에 대한 반대.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믿음. 소피는 자신을 저주한 마녀조차 돌본다. 만나는 생명들을 아끼고 챙긴다. 겉으로는 노인의 얼굴이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단단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묻는다. 어떻게 내 이름으로 살아갈 것인가.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릴 때는 마법 이야기였다.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새로운 얼굴로 말을 건다.


그날 밤 나는 평온하게 잠들었다. 소년의 얼굴로 꿈을 꾸며, 지금 이 시대가 어쩌면 가장 평화로운 시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우스 오브 카드와 트럼프, 픽션과 현실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