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의 흐름을 함께 읽는 자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에서는 매년 ‘기부트렌드’라는 책을 발간한다. 2015년부터 이어져 온 이 책은 한 해 동안의 기부 문화를 돌아보고, 기부자들의 행동 변화와 모금기관들의 전략을 분석한다. 단순한 통계나 사례 정리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흐름과 미래의 방향성까지 짚는 보고서다.
이 책은 시민 패널과 전문가 패널이 함께 만드는 참여형 연구로, 비영리와 기업의 사회공헌 실무자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기부트렌드 2026’에 나는 전문가 패널로 선정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모금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에 유일하게 선정된 것도 의미 있었다. 주말,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며 이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자기소개 시간은 ‘부캐 만들기’였다. 여행하고 싶은 장소, 좋아하는 색, 나를 닮은 동물을 조합해 나를 소개하는 시간. 나는 “구례에서 길을 잃은 파란 강아지”라고 적었다.
구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지칠 땐 아무 말 없이 걷는 걸 즐긴다. 시원하고 명확한 파란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고, 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과도 닮았다. 누군가를 따르거나 조용히 함께 걷는 모습, 바로 내가 지닌 감정의 결이다.
이 소개는 단순한 놀이 같지만, 오랜만에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질문이기도 했다. 어떤 환경에서 기운을 얻고,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말이다.
전문가 패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모금 일을 해온 분들이었다. 기업, 재단, 시민단체 등 출신은 다양했지만, ‘모금’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서로의 언어가 통했다. 간단한 점심을 나누며 각자 조직의 최근 이슈와 관심사를 이야기했다.
짧은 시간에도 깊은 공감이 오갔다. 익숙한 현장, 비슷한 고민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확신을 갖고 해왔던 결정들. 이 자리에서 내가 대학에서 느끼는 고민을 나눌 수 있었고,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특히 반가웠다.
전문가 패널은 앞으로 네 차례의 회의와 개별 인터뷰를 통해 책의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연구 목적상 밝히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내가 참여자로서 함께 고민하고 정리해나간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정책 제언’을 위한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고민을 안고 이 일을 해왔는지를 함께 적어 내려가는 작업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생각과 경험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일이다.
나는 브런치에 대학 모금에 관한 글을 종종 써왔다. 어쩌면 그 글들이 이 자리에 나를 데려다준 걸지도 모른다. 책 한 권의 일부가 된다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내가 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다듬는 데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들 안에 남아 있는 선한 마음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방식 가운데 하나가 모금이라는 도구라면, 나는 그 도구를 조금 더 잘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회의와 글쓰기,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내 안의 질문들과 조금 더 단단히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모금가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