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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틀 포레스트

뿌리를 내리는 법에 대하여

by 쏭저르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았다. 어떤 영화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여전히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임용고사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1년을 지내며 자신만의 삶의 뿌리를 내린다. 예전엔 이 영화를 보며 음식과 자연, 시골 풍경의 고요함 같은 외형적인 요소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이번에는 엄마가 왜 그곳을 떠났는지, 그리고 딸을 홀로 남겨둔 이유에 눈이 갔다. 덤덤하게 그려지는 이별의 순간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립이라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20년 동안 함께했던 엄마는 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서로가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주심기’는 단순히 식물을 옮겨심는 행위가 아니었다. 익숙한 것을 벗어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 그것이 바로 자립의 은유였다. 나 역시 그동안 삶을 살아오며 늘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관계나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외부에서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자립은 혼자 해내야 한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숫자로 표현되는 목표가 아니라,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자신을 점검하고 살아가는 것. 그게 진짜 자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살아내길 바란다. 별일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 사실은 누구나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런 혼자의 시간을, 혼자의 성장을 다정하게 보여준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작게 쪼개어 다시 그려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립은 그렇게, 아주심기처럼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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