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는 이유

늦어도 괜찮다는 이야기

by 쏭저르

요즘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정주행하고 있다. 이렇게 본방송으로 드라마를 챙겨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만든 작가다. 당대의 히트작을 만들어온 사람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또 오해영〉 이후의 작품은 보지 않았다. 현실을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를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가치함’이라는 단어에 끌려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


이 드라마는 대사가 많다. 어떤 장면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아지트에 모인 여덟 명의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반복된다. 한 사람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긴 대사들도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장면 전환은 거의 없다. 공간도 한정적이다. 아지트, 주인공의 집, 카페, 회사. 그 안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인을 다루지만 정작 촬영장은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과 회사, 카페를 오가는 일상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에 골목을 걷거나 뛰는 장면들이 잠깐씩 끼어든다.


몇 편을 연달아 보게 된 이유는 작은 판타지 요소 때문이었다. 주인공들은 감정을 감지하는 워치를 착용하고 있다. 일종의 실험이자 치료처럼 설정된 장치다. 여주인공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피를 흘리는데, 그 순간 상대에게 미묘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 오해영〉에서 미래를 보는 설정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지금 특별히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어서 이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장면 하나하나와 대사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무명의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자 주인공은 오랜 시간 주변 사람들은 다 시작했지만 자신만 아직 출발선에 서지 못한 채 세상의 시선과 버티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자 주인공은 혼자서 삶을 이어가지만 관계 속에서 계속 상처를 겪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래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얼마 전 일본에서 〈호빵맨〉을 만든 야나세 다카시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긴 무명의 시간을 지나 70대가 되어서야 작품이 널리 사랑받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지만 그 시점은 모두 다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일찍 내리고, 어떤 사람은 더 오래 타고 간다. 자신은 그저 끝까지 내려가지 않고 버텼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늦었다는 기준이 얼마나 모호한지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긴 시간 위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나의 가치가 드러날지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가끔은 지하철에서 내려 잠시 쉬기도 하고,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그냥 집으로 걸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